출간 때마다 기대-비판 한몸에 “독자가 손해보는 글 쓰진 않아”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무라카미 하루키,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홍은주 옮김/360쪽·1만4000원·문학동네
이호재 기자
“지난해 7월 재출간된 장편소설 ‘파친코’(인플루엔셜) 이후 오랜만의 대어(大魚)다.”
최근 출판계 관계자는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74)의 장편소설 ‘거리와 그 불확실한 벽’이 13일 일본에서 출간된 것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선인세가 20억 원 이상에 달한 ‘파친코’ 이후 국내에선 해외 작가 판권 경쟁이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무라카미의 신작인 만큼 국내 출판사가 출간을 두고 치열한 판권 경쟁을 벌일 것이라는 예측이다.
무라카미는 신작을 낼 때마다 기대와 비판을 함께 받았다. 1980년 문예지에 발표했으나 책으로 발간하지 않은 동명의 중편소설을 고쳐 쓴 ‘거리와…’를 두고도 그의 밑천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그는 항상 최악을 생각하며 버틴다. 그는 불안할 때도 “일단 쓴다. 오늘은 실컷 낮잠이나 자볼까, 이러지는 않는다”며 압박감을 이겨내는 비결이 근면함이라 강조한다.
무라카미는 상업적이라는 비판에 대해서 “난 경제 시스템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소설’이라는 패키지 상품을 만들어내는 생산자 중 하나일 뿐”이라며 “‘무라카미 인더스트리즈’에서 생산을 담당하는 거위”라고 솔직하게 답한다. 무라카미는 “지금까지 40년 가까이 소설을 써오면서, 독자가 절대 손해 보게 하진 않았다”고도 자부한다.
무라카미가 신작을 발표할 때마다 여성을 수동적으로 소비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거리와…’ 역시 고등학교 3학년인 17세의 주인공 ‘나’가 한 살 연하의 여고생과 교제하고, 이후 나이가 든 뒤에 여고생을 그리워하는 서사다. 무라카미는 “‘미안합니다’라고 순순히 사과하는 수밖에 없다”며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보면 어떤가?”라고 자신에 대한 평가를 들여다보려 한다. 정치적 문제를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노벨 문학상을 받지 못한다는 비판엔 “논쟁에 말려들 바에야 혼자서 조용히 내 소설을, 이야기를 정면에서 부딪쳐 가고 싶다”고 소신을 드러낸다.
‘거리와…’가 무라카미의 전작들에 비해 크게 흥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있다. 하지만 무라카미의 신작이란 이름값만으로 충분한 덕인지, 국내 주요 출판사 편집자들은 이미 ‘거리와…’ 일본판을 읽으며 시장성을 검토하고 있다. 벽 안쪽과 바깥이 병행하는 세계를 다뤘다는 황당한(?) 설정에도 ‘거리와…’가 다시 국내에서 ‘하루키 붐’을 일으킬 수 있을까 궁금하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