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괴산의 시골버스 기사입니다/한귀영 지음/238쪽·1만7000원·문화잇다
어쩌다 시골에서 버스를 탈 일이 있으면 맨 앞자리에 앉는 걸 좋아한다. 전면 통창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느긋하게 감상하는 맛이 일품이기 때문이다. 충북 괴산군에서 버스를 모는 저자의 눈에는 다른 것이 들어온다. 시골 사람들의 삶이다.
시골에는 노인들이 많다. 2019년 저자가 처음 버스를 몰기 시작했을 때는 기사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노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기사가 예뻐 보여서가 아니었다. 글을 몰라 버스 행선지가 적힌 안내판을 읽지 못하는 이들이 낯익은 기사 얼굴을 보고 집으로 가는 버스 노선을 알아봤던 것. 저자는 이 같은 사정을 알게 된 뒤로는 얼굴을 빤히 보는 노인분들에게 행선지를 먼저 여쭤본다고 했다.
시골 버스에서는 별별 사람을 다 만난다. 상의는 두툼한 파카를 입었지만 하의는 꽃무늬 사각팬티 하나만 걸친 채 버스에서 욕설을 경 읽는 것처럼 내뱉는 남자, 약속 시간에 늦었다고 “빨리 가자”며 버스 기사를 재촉하는 사람….
시골 버스는 단순한 운송 수단이 아니다. 장날을 기다린 노인들이 첫차를 타고 장 구경을 간다. 시골 버스 운행 횟수가 늘어나면 노인의 우울증 지수가 낮아진다는 논문이 있다고 한다. 또한 주민들의 ‘생존권’이기도 하다. 노선이 없어질까 봐 ‘오늘은 몇 명이나 탔는지’ 되풀이해 물어보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버스에 의지해 직장에 다니는 아주머니에게 버스는 곧 생계다.
저자는 “시골 버스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소시민들의 생활공간”이라고 했다. 미문의 외피를 띤 교언이 넘쳐나는 시대, 독자를 시골 버스로 이끄는 질박한 에세이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