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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기]사랑이라고 쓰고 나니 다음엔 아무것도 못 쓰겠다

입력 | 2023-04-29 03:00:00

최여정 지음·틈새책방




아버지의 헝클어진 뒷모습을 본다. 낮잠을 한숨 주무시고 나오셨나. 납작하게 눌린 아버지 뒷머리에 초가을 오후 햇살이 내려앉는다. 한 살배기 아기 정수리에 소용돌이치듯 솟아난 보드랍고 가느다란 머리카락 같네. 눈에 띄게 헐렁해진 아버지 허리춤 사이로 바람이 지나고, 당신의 남은 시간들이 흘러간다. 설렁, 스치는 가을바람에 휘청이는 아버지를 붙들러 뛰어간다. 아버지가, 깃털 같다.

공연기획자가 ‘리어왕’ 등 연극 9편을 보고 떠올린 생각을 담은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