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유 단국대 코치가 스피드스케이팅 경기 중 선수에게 초수를 보여주며 응원하고 있다. 진선유 코치 제공
16살의 어린 나이에 빙판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18살에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3개의 금메달(1000m, 1500m, 3000m 계주)을 목에 걸었고, 19세에 세계선수권 3연패의 위업을 이뤘다. 그리고 한창 기량이 만개해야 할 23살에 이른 은퇴를 했다.
세계 쇼트트랙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진선유(35)의 파란만장했던 선수 생활은 ‘짧고 굵게’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2011년 전국체전을 마지막으로 은퇴한 진선유는 그해 곧바로 모교인 단국대 코치로 채용돼 현재까지 코치로 일하고 있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과 2022년 베이징 겨울 올림픽 때는 해설위원으로 마이크를 잡았고, 간간이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있다. 대학원에서는 스포츠생리학으로 박사 과정도 밟고 있다.
예전과 달리 요즘엔 쇼트트랙 선수들도 꽤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한다. 이른 은퇴가 아쉽지는 않았을까. 진선유는 “원래 운동을 ‘짧고 굵게’ 하고 싶었다. 운동이 힘들기도 하고 이런저런 일을 많이 겪어서 운동을 오래 하고 싶진 않았다. 그런 찰나에 큰 부상을 당했고, 회복이 쉽지 않았다. 다른 분들이 생각하기엔 빨리 그만뒀다고 볼 수 있지만 나는 적정한 시기에 은퇴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22 베이징 올림픽에서 해설위원을 맡은 진선유. 왼쪽부터 이정수, 진선유, 이재후 KBS 아나운서. 진선유 코치 제공
단국대에서 그는 쇼트트랙 선수들만 지도하는 게 아니다. 단국대 빙상부는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는 훈련 때는 주로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들을 지도한다. 진선유는 “쇼트트랙을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다만 스피드스케이팅의 묘미를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알게 됐다. 다른 선수가 아닌 자기와의 싸움이 너무 멋있다. 스피드스케이트도 한 번 타보고 은퇴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있다”고 했다.
재능만큼 그는 노력도 많이 한 선수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자기 자신을 ‘게으른 사람’이라고 했다.
국가대표 쇼트트랙 선수들은 훈련량이 상당히 많다. 새벽부터 스케이트를 2시간 타고 오전에는 지상훈련을 한다. 점심 식사 후 다시 스케이트와 지상훈련이 이어진다. 야간 훈련을 하는 날도 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선수들이 여기에 개인적으로 훈련을 추가로 한다.
어린 선수를 지도하는 진선유 코치. 진선유 코치 제공
일상생활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흔히 말하는 ‘집순이’다. 별다른 취미 활동을 하기 보다는 집에서 드라마를 보거나 웹툰 등을 보는 것을 즐긴다. 그는 “주말에도 따로 약속이 없으면 집에서 뒹구는 스타일이다. 심지어는 방에서 하루 종일 나오지 않은 날도 있다. 놀면서 재충전을 하고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놀수록 에너지가 빠지는 느낌이다. 월요일부터 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요일에는 약속도 잘 안 잡는 편”이라고 했다.
선수 시절 그가 큰 효과를 봤다는 ‘인터벌 트레이닝’ 역시 그의 스타일을 반영한다. 스케이트 선수들은 사이클 훈련을 많이 하는데 쇼트트랙 선수들은 주로 실내 사이클을 많이 활용한다. 스피드스케이트 선수들 중에서는 도로 사이클을 타는 선수들이 많다.
진선유는 “‘죽음의 사이클’이라 불리는 인터벌 트레이닝은 정말 힘들지만 그만큼 효과도 큰 운동법이다. 10분 안에 사람이 죽을 수도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운동법은 30초 동안 전력으로 달린 뒤 1분 정도 천천히 페달을 밟는 것이다. 이렇게 3~5회를 반복한다. 자신의 몸 상태나 목표 기록에 맞춰 기어 변속을 바꾸면 된다.
선수 시절 폭발적인 스피드로 빙판을 지배한 진선유 코치. 동아일보 DB
2006 토리노 올림픽에서 3관왕에 오른 진선유 코치. 동아일보 DB
진선유는 요즘엔 선수 시절처럼 고강도의 운동을 하진 않는다. 대신 선수 시절 썼던 큰 근육보다 잔 근육을 키우고 유지하는 데 신경을 많이 쓴다. 유산소 운동인 러닝은 기본으로 하고 최근에는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집순이’ 답게 피트니스 센터를 찾기보다는 집에서 홈트레이닝도 간간이 한다. 여행을 갈 때는 등산지를 하나씩 끼워 넣는다. 진선유는 “어릴 때 여행은 주로 쉬기 위한 것이었다. 30대 접어들면서는 등산을 할 수 있는 코스를 하나씩 집어 넣는다. 그렇게라도 몸을 많이 움직이려 한다”고 했다.
그는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있다. 스포츠생리학으로 논문만 남겨두고 있다. 진선유는 “아무래도 내가 부상으로 인해 선수 생활을 일찍 그만둔 만큼 선수들의 부상 관리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비운의 스타’였다는 평가에도 그는 “모든 걸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한다. 선수 때 성적이 좋지 않았을 때도 나보다 다른 선수가 더 잘 탔다고 생각했다”며 “어린 나이에 세계 정상에 섰을 때 다른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