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파워인터뷰]“탄소중립, 경제 패권 달린 생존 문제… 한국판 IRA 서둘러야”

입력 | 2023-05-01 03:00:0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김상협 위원장
탈원전 내세운 문재인 정부… 온실가스 배출 오히려 늘어
미국 IRA-EU 그린딜 계획… 세계는 기후패권 전쟁 중
기후테크산업 육성하고… 국내 생산 기업에 보조금 줘야



지난달 27일 동아일보 본사에서 만난 김상협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장은 ‘녹색성장’의 중요성을 직관적으로 알리기 위해 초록색 안경테와 재킷을 착용했다. 머리카락도 초록색으로 염색했으나 지금은 색깔이 다소 빠졌다. 그는 최근 다리 골절 부상 탓에 왼손에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는 최근 ‘제1차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는 지난 정부의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이어받되 부문별 목표를 재조정했다. ‘남은 기간 이를 달성할 수 있겠냐’는 회의론과 동시에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는 당위론이 엇갈리고 있다.

이번 기본계획 수립을 주도한 김상협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장을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에서 만났다. 그는 “기후변화를 두고 산업적, 기술적 주도권 확보를 위한 글로벌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제 탄소중립과 녹색성장은 경제 및 에너지 안보가 달린 국가의 생존 문제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달성해야 할 탄소중립은 어떤 뜻인가. 이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은 무엇인가.

“탄소중립은 탄소 배출을 무작정 막을 수 없다면 배출량을 줄이고 배출한 만큼 흡수해 실질적인 배출량을 ‘0’으로 만들자는 개념이다. 그 핵심은 에너지다. 에너지 생산과 사용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얼마나 감축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린다. 이른바 ‘탈(脫)탄소’다. ‘탈원전’은 잘못된 방향이다. 탈원전 드라이브를 걸었던 문재인 정부 초반(2017,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각각 2.4%씩 늘었다. 원전 발전을 줄인 대신 석탄·액화천연가스(LNG) 발전 의존도가 높아진 탓이다. 화석연료에 의존한 전기에너지는 탄소중립에 역행한다. 지난 정부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한 다음에야 온실가스 배출량이 감소했다.”

―그렇다면 이번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은 그 핵심을 제대로 담고 있나.

“완벽한 계획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다만 현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내놓았다. 2030년 온실가스 40% 감축은 대한민국과 국제사회의 약속이다. 지난 정부가 60점을 맞고 이번 정부에 100점을 맞으라는 식이니 얄밉기도 하지만 그 약속은 지키는 것이 맞다. 문제는 전 정부가 떠넘긴 40%라는 숫자의 근거와 수단이 보이지 않았다. 예를 들어, 2년 전 발표에선 NDC 산업부문 감축 목표가 14.5%였는데 화학산업의 경우 이를 이행하려면 콩이나 옥수수 같은 식물로 만든 바이오 나프타 2360만 t가량이 필요하다. 전 세계 공급량(880만 t가량)의 3배를 수입해야 하는데 말이 되나. 이번에 산업부문 감축 목표치를 3.1%포인트 줄인 11.4%로 조정한 배경이다.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이행 가능하도록 재구성한 게 이번 계획이다. 이행 점검을 통해 하나씩 확인해 가면서 실행력을 확보해 갈 것이다. 2050년까지 6개 정부가 해야 할 일이고 이번 정부는 단단한 디딤돌을 깔 것이다.”

―온실가스 중 상당량은 기업이 배출한다. 산업부문 감축량을 줄이면 기후변화 대응이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철강 화학 반도체 등 한국의 주력 산업 대부분이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한다. 탄소중립에 있어 도전적인 요인이다. 하지만 기업이 탄소중립을 이행할 잠재력 또한 충분하다고 평가한다. 이미 전기차 같은 모빌리티는 역량이 상당 수준에 이르렀다. 개인적으로 세계 3위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포함한 2차전지 기술도 완성도가 높다. 기업에 당부하고 싶은 것은 경쟁력의 시점을 어제가 아니라 내일에 두라는 것이다. 대항해 시대에 부를 축적하던 범선 업체들이 18세기 후반 증기선이 나왔는데도 범선을 잘 만들려고 하다 파산했다. 기업이 미래의 경쟁력을 키우려면 유럽의 탄소국경제도(CBAM) 같은 국제 질서를 읽고 기술 개발에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

―기업이 탄소중립 기술과 역량이 있는데도 ‘탈탄소’가 늦어지는 이유가 있나.

“개인도 사회도 변화하려면 아픔이 뒤따른다. 탄소 경제를 탈탄소 경제로 전환하려면 비용과 시간이 든다. 비정상적으로 낮은 수준인 전기요금 현실화와 같은 고통스러운 조치들이 있어야 한다. 지금 누구도 그런 고통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지난 정부에서 원전보다 비싼 가스 발전을 늘리면서도 전기요금을 사실상 동결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발 에너지 대란까지 겹치면서 이제 전기요금을 조정하기가 너무 어렵게 됐다. 정치가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에 빠져 있고 국민이 그에 호응하는 한 ‘탈탄소 경제’로 변화할 추동력은 생기지 않는다.”

―정치가 기후위기 대응을 어렵게 한다는 이야기인가.

“영국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저서 ‘기후변화의 정치학’에서 임기 안에 갈등을 회피하는(Not in my term) 정치의 속성은 장기적이고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 해결을 어렵게 한다고 봤다. 기후위기만큼은 정치가 포퓰리즘 유혹을 벗어나야 하고,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이 일관성을 갖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도 온실가스를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이 다음 정부에서 폐기되면서 기업들이 기술 개발을 그만뒀고, 한국은 글로벌 리더가 될 기회를 잃었다. 소비자로서 권력을 가진 시민도 기업을 움직일 수 있다. 친환경 제품을 사고 기업의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에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기업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헌법 개정을 제안했다. 헌법 제정 당시 전혀 예상치 못했던 구조적 변화인 △기후위기 △인공지능 △인구변동 등 세 가지를 헌법에 담자는 제안이다. 그는 “헌법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토대인데 이 세 가지 변화는 헌법의 본질을 건드리는 문제”라며 “미래 개헌 시점에서 반영될 수 있도록 헌법적 토대를 만드는 작업을 하겠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미국 방문에서 한미가 안보동맹에서 기술동맹으로 나가고 있음을 강조했다.

“미국은 지정학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반도체 등 컴퓨팅 △백신 등 바이오 △청정에너지 등 세 분야에서 기술 패권을 가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특히 청정에너지 산업 육성이 그 목적이다. 단언컨대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였던 기술동맹의 핵심은 녹색동맹이라고 할 수 있다. 한미 정상 공동 선언문에도 청정에너지 분야에서 광범위한 협력을 하는 내용이 포함됐고, 전체 양해각서(MOU) 체결 50건 중 13건이 소형모듈원전(SMR), 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CCUS) 등 청정에너지 분야다. 한미가 글로벌 전략적 녹색동맹으로 간다는 뜻이다. 다만 미국의 공급망 재편에 포획되듯이 끌려가선 안 된다. 큰 그림은 같이 그리되 2차전지나 원전 등에서 기술적인 우위를 가짐으로써 핵심적 국익은 지켜 나가야 한다.”

―한국이 경제 안보와 에너지 안보를 지키려면 기후위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기후테크 산업을 키워야 한다. 미국이 IRA를 발표한 건 기후위기를 기회 삼아 탄소중립 산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거다. 유럽연합(EU)의 그린딜(Green deal) 산업 계획은 미국의 IRA에 대응해 EU 국가별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이다. 유럽판 IRA라 할 만하다. 두 법안 모두 ‘탈탄소’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고, 역내 생산량이 많을수록 보조금을 주도록 설계됐다. 온실가스를 줄이는 쪽으로 변화할 실질적인 인센티브가 생긴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우리도 한국판 IRA를 만들어야 한다. 국내 생산 기업에 보조금을 주고, 기업용 전기요금을 올리는 등 지원과 규제를 병행해야 한다. 한국은 산업정책을 잘해 성공한 나라다. 그런데 기득권을 가진 산업에 갇혀 기후테크 육성에 소극적이다. 해외에선 벌써 어마어마한 투자금이 기후테크 기업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다.”





김상협언론인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 시절 미래비전비서관, 녹색성장기획관을 역임하며 ‘녹색성장’ 정책의 기반을 닦았다. 2013년부터 KAIST 녹색성장대학원 초빙교수를 지냈고 현재는 부총장으로 재임 중이다. 윤석열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기후에너지팀을 이끌었고, 지난해부터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