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원 서울대 명예교수·대금 연주가
“나는 죽어도 주환의 마음속에 다시 살으리.”
―유기룡 ‘예농일여의 생애―젓대명인 한주환 선생을 도(悼)함’ 중에서
예나 지금이나 연주가에게 산조는 특별한 음악이다. 몰입의 세계를 경험하게 하고 깊은 구렁텅이로 몰아넣어 좌절하게도 만든다. 녹록하지 않은 생활을 견디도록 연주가의 삶을 붙들어 두기도 한다. 이런 산조의 힘은 그 음악 속에 전해오는 선대 연주가의 희로애락이 내 삶에 겹쳐 실리기 때문이다. 느린 진양조에서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로 점점 속도가 빨라지는 구성은 사람의 일생과 닮아 있다. 게다가 각 악장에서 풀어내는 조(調)의 변화는 악절마다 새로운 사연을 엮어 간다. 박종기 명인의 대금산조는 한주환 명인에 이르러 틀이 온전해졌고, 그 제자들의 개성이 보태지면서 스승과 제자의 금도(笒道)는 서로 다른 유파를 창출하며 풍성해졌다.
올봄, 나는 오랜만에 한주환류 대금산조를 무대에 올렸다. 한주환의 연주는 힘 있고 강렬하다. 고졸한 선율 속에서 대나무 통이 쫙 갈라질 듯 에너지가 폭발하는 성음은 20대의 나를 매료시켰다. 말년의 한주환 명인보다 더 나이를 먹은 지금도 나는 여전히 명인의 성음을 좇는다. 스승의 마음을 헤아리고 제자 역시 자신의 마음을 더해 시간이 겹겹이 쌓이는 음악, 산조! 그래서 연주가는 죽어도 그 음악 속에 계속 살아 숨 쉰다.
임재원 서울대 명예교수·대금 연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