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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리퍼블릭’ 파산수순… 美 은행 올들어 4번째

입력 | 2023-05-01 03:00:00

美 14위… 은행위기 재확산 우려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퍼스트리퍼블릭 은행 앞을 경비원이 지키고 있다. 미국 동·서부 연안 대도시에 90여 개 영업점을 갖고 있는 미국 내 14위인 이 은행은 3월 대량 예금 인출 사태에 이은 주가 폭락 등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인수 절차에 들어가게 됐다. 샌프란시스코=AP 뉴시스

3월 한 달 동안 고객 예금이 130조 원 이상 빠져나간 미국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이 결국 붕괴 수순을 밟게 됐다. 3월에 실버게이트, 실리콘밸리은행(SVB), 시그니처은행 파산 이후 벌써 4번째 은행 실패다.

진정 국면으로 접어드는 듯했던 미 은행 위기가 다시 촉발될까 미 규제 당국은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오후 현재 퍼스트리퍼블릭 인수를 위한 입찰을 마감하며 매각을 저울질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유동성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가 급격한 금리 인상의 직격탄을 맞은 금융 시스템의 ‘약한 고리’가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목요일인 27일 밤부터 퍼스트리퍼블릭의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인수자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24일 퍼스트리퍼블릭이 1분기(1∼3월) 실적을 발표한 후 만 3일 만이다. 실적 발표에서 이 은행의 1분기 순수 고객 예금 인출이 1020억 달러(약 137조 원)로 예상보다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자 지난주 이 은행 주가는 75.4% 폭락했다.






실적 발표후 주가 75% 급락… 美 14위 은행 ‘역사 속으로’



퍼스트리퍼블릭 파산 임박
팬데믹때 판매 저리 모기지에 발목… 긴급 지원에도 인출 행렬 못막아
당국, 회생 불가 판단 인수자 물색…  ‘블랙먼데이’ 피하려 긴급 입찰 마감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등은 월요일 주가 폭락을 의미하는 ‘블랙 먼데이’를 피하기 위해 일요일인 4월 30일을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의 입찰 마감일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FDIC가 입찰 의사를 물은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PNC파이낸셜그룹, US뱅코프 등 중에서 JP모건과 PNC, 시티즌스가 입찰에 참여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입찰을 통한 매각이 불발될 경우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당시처럼 FDIC가 파산관재인을 맡아 예금과 자산을 인수해 직접 관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어느 쪽이든 퍼스트리퍼블릭은 사실상 파산으로, 2008년 워싱턴뮤추얼 은행에 이어 미 역사상 두 번째 규모의 은행 실패로 기록된다.





● 미 14위 은행도 역사 속으로
자산 규모 2330억 달러(약 312조 원)인 퍼스트리퍼블릭이 SVB처럼 갑작스러운 파산, 영업정지 수순을 겪을 경우 시장의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됐다. 이에 규제당국은 인수 중재에 먼저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SVB는 3월 10일 폐쇄 이후 27일 퍼스트시티즌스 은행에 인수될 때까지 글로벌 금융시장이 공포 전이에 시달렸다. 반면 파산 직전에 몰린 스위스 2위 대형은행 크레디트스위스는 스위스 당국의 중재와 전폭적인 지원으로 1위 UBS에 인수돼 시장 공포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2008년 워싱턴뮤추얼과 투자은행(IB) 베어스턴스도 파산 직전 정부의 중재로 JP모건에 인수된 바 있다.

앞서 미국 금융당국과 다른 대형은행들은 최근까지도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의 파산을 막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3월에 미국 내 자산 규모 16위 은행인 SVB와 29위인 시그니처뱅크가 파산하면서 14위인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에도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조짐이 나타나자 JP모건체이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11개 은행이 긴급자금 300억 달러(약 40조 원)를 예치했다. 연방준비은행(FRB)도 1000억 달러(약 134조 원)를 긴급 대여한다고 발표하며 충격 완화에 나섰다.

하지만 고객들의 전례 없는 인출 행렬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의 총 예치금 중 63%는 기업 고객 자금이었고, 예금자 보호 한도 25만 달러(약 3억 원)를 넘는 예금 비중이 68%에 이르는 등 불안에 취약했다. 예금을 계속 넣어둘 경우 대규모 손실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 팬데믹 당시 저리 주택담보대출이 발목
198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된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은 동·서부 연안 대도시 90여 개 점포에서 미 부호 고객들을 유치해 미 월가의 부러움을 사왔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도 이 은행 고객이었다.

퍼스트리퍼블릭은 다급하게 자산 매각을 시도해 왔지만 저금리 시기에 대량 판매한 고정금리 장기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상품이 발목을 잡아 불발됐다. 팬데믹 기간 집값 상승기에 판매한 모기지가 고금리, 집값 하락기를 맞아 대출 자산가치가 급격히 하락한 것이다.

차입금에 대한 이자 비용이 커진 것도 몰락의 요인으로 꼽힌다. 고객 대출로 벌어들이는 평균 이자 수익은 3.73% 남짓인데, 연방준비은행 등에서 빌린 대출금 이자 비용은 3∼4.9%로 더 클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이 때문에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의 순이자 마진이 연말에 ‘제로(0)’에 도달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고, WSJ는 “퍼스트리퍼블릭이 산송장이 됐다”고 전하기도 했다.

결국 미 규제 당국은 은행 인수 과정에서 일부 부담을 떠안거나, 일단 FDIC가 파산관재인으로 떠안은 후 헐값에 매각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앞서 지난달 27일 커린 잔피에어 미 백악관 대변인은 “퍼스트리퍼블릭을 주시하고 있으며 필요시 개입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