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4월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로부터 ‘돈봉투 의혹’ 관련 질문을 받고는 “(국민의힘) 김현아 (전) 의원은 어떻게 돼가고 있어요? 몰라요?”라고 물었다. 뉴시스
지난주 여의도에서 화제였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김현아는요’ 발언에 대한 민주당 측 설명입니다. 4월 24일 당 최고위원회의를 마치고 나온 이 대표는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대뜸 “김현아 전 의원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요? 몰라요?”라고 되물었습니다. 김 전 의원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보도와 관련해, 그건 취재하고 있냐는 취지로 따진 거죠.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비공개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전 의원 수사 관련 언론 보도가 거론됐다고 합니다. ‘우리도 김 전 의원 문제를 언급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는데, 그게 뇌리에 남았는지 이 대표가 기자들 앞에서 예정에 없던 말을 했다는 겁니다. 또 다른 회의 참석자도 “이 대표가 ‘내가 이런 말을 하기엔 (당 대표로서) 좀 그렇겠지?’라고 하고는, 자기도 모르게 툭툭 튀어나오는 것 같더라”라고 했습니다. 당 대표로서의 이재명과 정치인 이재명 사이에서의 ‘정체성 고민’이란 거죠.
민주당의 돈봉투 사태 속 이 대표가 연이틀 여당 정치인들의 과거 사건을 꺼내든 건 ‘부패 원조 맛집은 국민의힘’이란 걸 강조하기 위한 일종의 ‘물타기’ 전략입니다. 하지만 이런 수준의 논점 흐리기로 돈봉투 의혹을 덮을 순 없겠죠.
국민의힘 김현아 전 의원은 자신을 언급한 이재명 대표를 향해 “본인과 당 문제에나 주력하시죠”라며 “만약 물타기로 저를 고르셨다면 헛다리 짚으셨다”라고 경고했다. 페이스북 캡처
“남의 잘못으로 나의 잘못을 덮으려는 프레임 전환은 오래된 정치권의 병폐다. 프레임 전환을 시도할 게 아니라 우리의 잘못을 먼저 해소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다.”(이원욱 의원, SBS라디오)
“민주당 입장에선 답답한 측면이 있긴 하다. 그런데 저런 말을 당 대표가 직접 하는 건 조금 부적절해 보인다.”(복기왕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YTN뉴스)
제가 당일 썼던 기사(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30425/119004476/1)에도 비슷한 반응의 댓글들이 이어졌습니다.
“유치원생의 잘못에 대해 선생님이 지적하니까 ‘쟤는요?’ (라고 묻는) 것과 한 치의 차이도 없다. 저게 대한민국 제1당 대표 수준이니…” (heju****)
“국민의힘이 잘못한 건 그쪽 잘못이고 민주당이 잘못한 건 민주당도 썩었다는 건데 당 대표라는 사람이 민주당 대책을 묻는 기자에게 ‘국민의힘 수사는 어떻게 되고 있냐’는 게 그게 국민을 위한 정치냐.”(lkp6****)
4월 26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장경태 최고위원이 지난해 11월 제기한 ‘김건희 여사 캄보디아 조명 의혹’ 영상을 함께 시청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청래 최고위원, 이재명 대표, 고민정 최고위원. 뉴스1
최고위원들과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영상을 지켜보던 이 대표는 “저희가 웃고 얘기하지만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판단을 하기에 앞서 육안으로 봐도, 상식적으로 봐도 조명을 사용한 게 맞는 것 같다”라며 자신도 고발하라고 자신 있게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실제 고발당했죠.
국민의힘 이종배 서울시의원은 다음날 이 대표를 경찰에 고발하면서 “최근 경찰 수사 결과 조명이 설치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이 대표가 공개 석상에서 조명이 설치됐다고 주장한 것은 공연히 허위 사실을 적시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대체 이게 무슨 행정 낭비인가요.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도 “당 대표가 ‘나도 고발하라’라는 건 스스로 정치를 포기한 채 정치를 사법화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한 당직자는 “가뜩이나 자신의 사법리스크로 당이 지난 몇 달을 고생했는데 굳이 또 과도한 언행으로 추가 고발당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냐”라며 “저게 지금 최고위원회의에서 언급할 만한 사안이긴 하냐”라고 한탄하더군요.
돈봉투 사건으로 수세에 몰린 탓인지, 최근 이 대표의 발언 수위는 나날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4월 22일 트위터엔 여권의 주 69시간제 관련 정책 기사를 링크하며 “‘남 탓’ 본색이 정신질환 수준까지 발전한 듯”이라고 썼습니다.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하고 차별과 편견을 조장하는 표현이라고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는 결국 정치의 품격, 지도자의 자격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어느 조직이든 ‘대표’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조직의 ‘군기반장’을 자처해 조직원들의 잘못된 부분은 지적해 결과적으로 조직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이끄는 겁니다. 실제 민주당의 이전 당 대표들은 부적절한 언행을 하는 의원에겐 “국민께 걱정을 드리는 언동을 하지 말라”(이낙연 전 대표)고 공개적으로 주의를 시키는가 하면,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킨 의원에겐 경고와 함께 사과 등 공식 입장 표명을 요구(김태년 전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도리어 지도부가 앞장서 부적절한 표현을 하고 자기들끼리 감싸고 독려하니 정치의 품격이 연일 나락으로 떨어지는 겁니다.
국민의힘 장동혁 원내대변인(왼쪽)과 정희용 원내대표 비서실장이 4월 28일 오전 서울 국회 의안과에서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의원에 대한 징계안을 제출하고 있다. 뉴스1
한 야권 관계자는 “지금은 정부·여당이 워낙 못하기 때문에 민주당은 가만히만 있어도 반사 이익을 얻을 수 있는데, 170명이 각자 알아서 날뛰니 매일같이 스스로 지지율을 깎아 먹고 있다”라며 “내년 총선 때까지 이를 제어할 리더십이 시급하다”라고 했습니다.
다만 아무래도 ‘맞는 말’ 대잔치로 내부에 매서운 쓴 소리를 하려면 일단 리더 본인이 누구보다 떳떳해야 하겠죠. 이래서 많은 분들이 ‘이재명 사법리스크’가 민주당의 가장 최대 리스크라고 우려했던 건가 봅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