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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화 파워… 中 대외 결제서 달러 첫 추월 [횡설수설/정임수]

입력 | 2023-05-01 21:30:00


“왜 우리는 자국 통화로 무역할 수 없는가. 달러가 세계 무역을 지배하는 상황을 끝내야 한다.” 지난달 중순 중국을 국빈 방문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상하이 신개발은행에서 이같이 말했다. 중국과 브라질의 ‘탈(脫)달러’ 밀착을 보여주는 상징적 연설이었다. 두 나라는 양국 간 교역과 금융 거래에서 달러 대신 위안화와 헤알화를 이용하고, 달러 결제망인 ‘스위프트’ 대신 중국이 만든 금융결제망을 쓰기로 했다.

▷브라질처럼 중국과의 거래에서 위안화를 사용하는 국가가 늘면서 미국의 달러 패권에 맞서 중국이 추진해온 ‘위안화 출해(出海·국제화)’가 가시적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3월 중국의 대외거래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48%로 집계됐다고 블룸버그 산하 경제연구소가 분석했다. 2020년 사실상 0%였던 위안화 결제 비중이 급속도로 늘어 사상 처음 달러를 추월한 것이다. 이 기간 달러 결제 비중은 83%에서 47%로 고꾸라졌다.

▷위안화 몸값을 높인 결정적 계기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금융 제재로 고립된 러시아가 달러, 유로 대신 택한 게 위안화였다. 전쟁 이전만 해도 러시아 수출대금에서 위안화 결제 비중은 1%도 안 됐지만 이제 16%에 달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3월 중-러 정상회담 직후 “러시아는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와의 결제에서도 위안화 사용을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세계 최대 석유 수입국인 중국은 특히 중동 국가들과 손잡으며 ‘페트로 위안’의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3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은행에 첫 위안화 대출을 내줬고, 아랍에미리트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대금 결제를 처음 위안화로 했다. 반대로 사우디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는 중국 룽성석유화학의 지분 인수를 위안화로 결제하기로 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제안한 대로 사우디와 중국 간 석유 거래마저 위안화로 결제된다면 1975년 이후 원유 결제는 달러로만 한다는 ‘페트로 달러’ 체제에 심각한 균열이 생기는 셈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달러 중심 국제통화 체계에 의문을 제기한 중국은 2009년 위안화 국제화를 국가 정책으로 삼았다. 최근 미중 패권 전쟁이 심화되고 팬데믹 이후 이어진 ‘킹달러’에 신흥국들의 불만이 쌓이면서 위안화 국제화가 가속화되는 분위기다. 위안화가 달러를 대체하는 수준으로 지배력을 키우기엔 갈 길이 멀지만 ‘출해’ 속도만큼은 예사롭지 않다. 한국도 말로만 ‘원화의 국제화’를 부르짖을 것이 아니라 경제와 외교가 일체가 된 종합전략을 세우고 지속적으로 실천해 나갈 필요가 있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와 같은 재앙을 두 번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도 ‘원화’의 힘을 키워야 한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