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응급환자를 돌보던 외과 전문의가 미용 시술을 하고 흉부외과 전문의는 무좀 치료를 한다. 이처럼 자신이 전공한 전문과목이 아닌 다른 과목 진료를 하는 동네 의원 전문의가 10명 중 3명꼴인 것으로 집계됐다. 길게는 6∼7년간 주 100시간 넘게 인턴과 레지던트로 일하면서 연마한 전문 의료기술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사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상근하는 전문의 4만5314명 중 28.4%인 1만2871명이 원래 전공과 다른 과목을 진료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공과 실제 진료과목이 불일치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분야는 흉부외과 전문의로 82%나 됐다. 필수의료 과목인 외과도 불일치 비율이 52%로 높았다. 흉부외과 전문의 10명 중 8명, 외과 전문의 절반 이상이 동네 의원에서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대학병원 응급실을 10년간 지키던 응급의학과 교수가 병원을 그만두고 3년간 동네 성형외과에서 기술을 익힌 뒤 개인 의원을 차려 미용 성형을 하고, 대학병원 흉부외과에서 8년간 수많은 심장병 환자를 살려낸 의사는 그만두고 동네 의원에서 티눈 제거 레이저 시술을 하는 실정이다.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분야의 전문의들이 경력을 포기하고 보톡스 주사를 놓거나 감기 환자를 보는 이유는 원래 전공과목이 고되고 소송의 위험은 큰 반면 보상은 적고 일과 생활의 균형을 찾기 어려워서다. 사람 살리는 보람에 병원에서 쪽잠 자가며 수술실을 지키던 의사들은 자녀 얼굴도 못 보는 생활이 길어지고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면 하나둘씩 수술실을 떠나게 된다. 가뜩이나 필수의료 분야는 전공의 모집도 안 되는데 어렵게 전공의 과정을 마친 전문의들마저 피부과나 성형외과 쪽으로 쏠리다 보니 진료과목별 의사 수급 불균형은 점점 악화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