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이 고려를 침공했을 때 제일 가치 있는 노획물은 사람이었다. 젊고 건강한 남녀를 잡아가 노예로 팔았다. 강화가 성립되고 전쟁이 끝나도 잡혀간 사람들을 되찾아 오기가 쉽지 않았다. 이미 팔려 간 사람을 찾아오려면 주인에게 값을 지불해야 했다.
고려말 왜구들이 납치해간 사람들이 꽤 있었다. 정몽주는 이들이 잡혀간 것은 나라와 통치자들의 책임이라고 관료들을 대상으로 모금 운동을 했다. 이 운동은 성공해서 상당수의 고려인을 귀국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정말로 드문 사례다.
병자호란 때 청군에게 잡혀갔던 사람들은 정부가 못 본 척하자 심양에 있던 소현 세자의 거처에 와서 시위를 했다. 소현 세자는 무역으로 모은 자금으로 이들을 풀어주고, 농장을 만들어 수익사업을 했다. 이렇게 모은 자금으로 사람들을 계속 구하자는 구상이었다. 세자의 노력은 포상을 받기는커녕 사병을 키우고 왕위를 노리는 게 아니냐는 인조의 의심만 샀다.
우리 전쟁사에서 포로, 끌려간 백성들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보면 기가 막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지만 무조건 지배층의 몰상식을 탓할 일만도 아니다. 잡혀간 자신들의 친인척도 어쩌지를 못했다. 절반의 이유는 나라가 가난하고 능력이 부재했던 탓이다. 이번 수단 내전에서 우리 국민들이 무사 귀환을 했다. 국가의 행동은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다. 책임감 못지않게 능력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국제사회는 여전히 정글이고 힘없는 정의는 통하지 않는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