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정의연대와피해자들이 지난해 6월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계약취소 결정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2일 동아일보가 확보한 2019년 12월 12일 시중은행 PB A 씨와 펀드 피해자 김모 씨 간 통화녹음 파일에는 A 씨는 이탈리아헬스케어 펀드가 제3의 인물을 끌어들여 채무를 떠넘기는 ‘폰지사기’ 구조인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판매를 진행한 정황이 담겼다. 해당 통화는 펀드를 이미 산 김 씨가 투자 회수에 대해 불안함을 호소하자 A 씨가 펀드 구조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A 씨는 통화 초반부 김 씨에게 “(이탈리아헬스케어 펀드는) 원래 2, 3년 (만기가) 찍혀 있다. 그런데 1년 1개월 후에 우리(시중은행)가 조기상환을 무조건 해준다고 했다“며 펀드의 내용 개괄 설명했다. 이탈리아헬스케어 펀드는 이탈리아의 의료 채권에 투자하는 해외 펀드에 투자하는 재간접 펀드로, 실제로는 2~3년이 만기인 펀드를 13개월 만에 조기상환이 가능하다고 속여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모두 1500억 원어치가 판매됐다.
같은 해 12월 30일 A 씨와 김 씨의 또 다른 통화에서 김 씨가 펀드 구조에 대해 재차 문의하자 A 씨는 “조기상환 조건이 되는 게 아니라 저희가 이제 1년 1개월일 때, 이 상품을 그냥 상환을 시키고 이제 우리 투자자들은 그냥 1년 1개월 만에 돈을 회수하고, 우리(시중은행)는 이 상품을 또 다른 분한테 팔고”라며 돌려막기 펀드 구조를 다시 설명하기도 했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부장검사 채희만)는 해당 내용의 녹취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해당 내용을 토대로 시중은행 내부에서 사기 펀드를 조직적으로 판매했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은 이탈리아헬스케어 펀드를 판매사인 시중은행이 직접 지시해 만든 ‘OEM펀드’로 보고 있다. 녹취록에 따르면 그 구조를 일선의 PB들까지 알고 판매했다는 것”이라며 “환매중단 사태의 책임이 조직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주장했다.
한편 검찰은 올 1월 시중은행 전 직원 신모 씨를 구속기소하며 공소장에 “피고인은 (이탈리아헬스케어 펀드가) 무조건 조기상환이 가능한 것처럼 거짓말하여 투자자들을 끌어모았고, 신규 투자금으로 기존 투자자의 자금을 상환하는 구조(일명 ‘돌려막기’)로 설계, 운용하기로 계획했다”고 적시했다.
구민기 기자 k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