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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생각을 외신을 통해 아는 게 정상인가[오늘과 내일/이승헌]

입력 | 2023-05-02 21:30:00

외신 인터뷰만으로는 대통령 생각 충분히 몰라
까칠하다고 국내 언론 피하는 건 尹답지 않아



이승헌 부국장


윤석열 대통령은 줄곧 국내 언론이 아니라 외신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밝혀왔다. 당선 후 첫 인터뷰를 워싱턴포스트와 했고 3월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는 요미우리 아사히 마이니치 닛케이 등 일본 언론과 인터뷰했다. 지난달 방미 전후로는 NBC 워싱턴포스트 로이터를 통해 12년 만의 미국 국빈방문에 임하는 생각을 공개했다. 이전 대통령도 외신과 인터뷰를 했지만 이 정도로 일방적이진 않았다.

왜 이런 선택을 하는 걸까. 대통령 주변의 말을 종합하면 메시지를 원하는 방향으로 내보내기 쉬울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라고 한다. 까칠한 질문을 던질 국내 언론보단 메시지 컨트롤이 용이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국민은 외신을 통해 윤 대통령의 생각을 충분히 잘 알고 있나. 대통령실도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방미 전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나온 ‘일본 무릎’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필자는 외신 인터뷰 일변도의 메시지 전달에 3가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첫째, 국민이 모국어로 대통령 생각을 접하지 못한다. 인터넷 번역 프로그램이 있다지만 주요 사안에 대한 미세한 뉘앙스와 호흡까지 전할 수 없다. 한 글자 차이로 전혀 다른 결과를 내는 외교안보 이슈는 더욱 그러하다. 윤 대통령이 방미 전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처음 밝힌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가능성은 러시아와의 관계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런 메시지를 국민들은 영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우리말로 재번역해 접했다.

둘째, 대통령의 깊이 있는 답변을 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다. 외신 기자들이 아무리 역량이 뛰어나도 한국 언론만큼 대통령을 관찰하고 감시할 수는 없다. 워싱턴에 파견된 한국 특파원들이 밤낮으로 일해도 뉴욕타임스 같은 현지 언론보다 백악관 정보가 부족한 것과 마찬가지다. 외신들도 무슨 일이 터지면 한국 언론을 통해 대통령과 주변을 취재한다.

셋째가 가장 심각한데, 국내 여론과 대통령 간에 간극이 생기는 ‘디커플링’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한국 언론이 다루는 대통령 말은 일방적으로 쏟아낸 회의 발언이 대부분이다. 권력자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국민과 대화하고 설득하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대표적인 메시지 실패 사례인 ‘69시간 근로’ 논란, 워싱턴선언의 NCG(핵협의그룹)가 사실상 핵공유인지를 놓고 감지된 한미 간 온도 차도 언론을 통한 충분한 대국민 소통이 부족한 것과 무관치 않다.

윤 대통령은 이번 방미에서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국내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국정 현안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게 맞다. 일부 언론의 보도 행태에 비판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까칠하고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국내 언론과 제대로 된 인터뷰를 계속 피하는 건 윤석열답지 않다. 이번에 만난 바이든이 부통령 시절 8년간 함께하며 형제로 부르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2017년 1월 퇴임 기자회견 한 대목을 마지막으로 소개한다. 이런 게 글로벌 스탠더드 언론관이기 때문이다.

“언론인 여러분이 쓴 기사가 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우리(권력과 언론) 관계의 본질이다. 여러분은 아첨꾼(sycophant)이 아니라 회의론자(skeptics)여야 한다. 나에게 거친 질문(tough questions)을 던져야 한다. 언론이 비판적 시각을 던져야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은 우리도 책임감을 갖고 일하게 된다. (중략)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차기 정부에서도 집요하게 진실을 끄집어내서 미국을 최고의 상태로 만들어 달라.”



이승헌 부국장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