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모건 인수로 급한 불 껐지만 지역은행 주가급락 등 추가 징후 “은행들 대출 줄일것” 잇단 경고 금리결정 앞둔 연준 행보에 촉각
1일(현지 시간) 오전 미국 뉴욕 맨해튼 센트럴파크 인근 퍼스트리퍼블릭 은행. 이날 새벽 미 규제당국이 압류한 뒤 JP모건체이스에 매각하는 등 하루아침에 은행 주인이 바뀌었지만 평소처럼 차분한 분위기로 영업 중이었다. 고급 상점가에 위치한 이 지점의 간판이나 현금자동입출금기(ATM)도 ‘퍼스트리퍼블릭’ 이름을 달고 있었다. 3월 한 달 동안 1000억 달러(약 130조 원) 이상 예금이 이미 빠져나간 탓인지 매각 소식을 듣고 추가로 예금을 인출하려는 행렬은 보이지 않았다.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이날 오전 3시 40분경 은행 폐쇄와 동시에 JP모건에 매각한다고 발표하는 등 월요일 영업 전에 발 빠르게 대응해 고객 혼란을 막았다. 그로부터 6시간여 뒤 개장한 뉴욕 증시도 대형주 중심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가 0.04% 내려가는 등 소폭 하락으로 ‘블랙먼데이’를 피했다.
하지만 미 로스앤젤레스 기반 지역은행인 팩웨스트 주가가 10.6% 떨어진 데 이어 키코프, 자이언스 등도 4% 안팎으로 하락하는 등 여진이 이어졌다. 미 월가 투자자들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며 추가 은행 위기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 다이먼 “숨 쉬자”에 “이제 시작” 경고음
2008년 워싱턴뮤추얼에 이어 이날 퍼스트리퍼블릭 은행 인수로 미 역사상 파산 규모 1, 2위 은행을 모두 인수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은 투자자들과의 콘퍼런스콜에서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이 부른) 은행 위기의 이번 파트는 이제 끝났다”며 “깊게 숨을 내쉬어도 된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번 조치는 미국 금융이 강하고 건전하다는 의미”라며 “예금자들은 구했고, 납세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날 미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에서 열린 밀컨 콘퍼런스를 찾은 대부분의 월가 큰손들은 “이제 시작”이라며 우려했다. 미 역사상 4대 최대 규모의 은행 실패 사례 중 3곳(퍼스트리퍼블릭, 실리콘밸리은행, 시그니처)이 최근 두 달 새 무너진 것은 분명한 위험 신호라는 것이다. 1조2000억 달러(약 1606조 원) 규모의 자산운용사 PGIM의 데이비드 헌트 최고경영자(CEO)는 “퍼스트리퍼블릭 문제가 해결돼 다들 안심하는 분위기 같다. 하지만 이제 막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점점 대출 규제는 엄격해지고 결국 신용 공급이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모펀드 운용사 아폴로의 마크 로언 CEO도 “은행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두 번째 (위기) 물결이 올 것”이며 위험한 영역으로 상업 부동산 시장을 들었다.
● 연준, 인플레 vs 금융안전 또 갈림길
은행 위기 확전을 우려하는 이들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년여 동안 금리를 4.75%포인트 급격하게 올린 여파가 이제 드러나고 있다고 본다. 강력한 규제를 받고 있는 중량급 상업은행 3곳이 줄줄이 쓰러질 정도면 비금융기관이나 상업 부동산 시장은 더욱 곪아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 경제계에서는 연준이 숨고르기에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이 높아지고 있지만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이번에도 베이비스텝을 결정할 것이 유력하다. 다만 이번이 마지막 인상이 될 것인지 시장의 이목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입에 쏠리고 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