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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선 공공장소 술병 소지도 처벌… 韓은 대낮부터 ‘공원 술판’

입력 | 2023-05-03 03:00:00

[음주범죄에 관대한 사회]
싱가포르, 금주 위반 벌금 100만원
서울 ‘금주구역’ 시도 반발 부딪혀




“건배!”

1일 오후 3시경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 중년 남성 6명이 나무 테이블에 앉아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마시고 있었다. 대낮부터 얼굴이 불콰해진 이들은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따라 부르기도 했다. 지나던 시민 일부가 눈살을 찌푸렸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한국에선 공원 등 공공장소에서 술을 마시는 게 일상화돼 있다. 이날 오후 반포한강공원에서도 대낮부터 술을 마시는 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강공원 음주 규제 논의를 촉발시킨 손정민 씨 추모 공간 건너편에도 텐트를 치고 수십 명이 술을 마시는 모습이었다. 일부는 만취해 몸을 가누지 못했다.

해외 선진국에선 공공장소 음주 행위를 규제하는 곳이 적지 않다. 미국 뉴욕주에선 공공장소에서 술병을 개봉한 채 들고 다니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호주도 거의 모든 공공장소를 ‘음주금지구역(dry area)’으로 지정해 놓고 있다. 싱가포르는 오후 10시 반부터 오전 7시까지 공공장소에서 음주를 금지하고 위반할 경우 한국 돈으로 약 1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국내에서도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금주구역이나 음주청정구역을 지정해 운영하고 있지만 유명무실한 경우가 상당수다. 서울시는 2018년 서울숲 등 22곳을 음주청정구역으로 지정하고 해당 지역에서 술을 마시고 소란을 피웠을 경우 1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하지만 올 들어 4월 말까지 과태료를 부과한 경우는 한 건도 없다.

실제로 1일 오후 5시경 동아일보 기자가 서울시 지정 음주청정구역인 서울 마포구 경의선 숲길을 찾았을 때 시민 20여 명이 큰소리로 떠들며 술을 마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금주구역은 음주청정구역과 달리 소란을 피우지 않더라도 음주 자체를 금지하고 어기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서울시는 2021년 손정민 씨 사망 이후 한강공원을 금주구역으로 지정하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한강에서 맥주도 못 마시게 하느냐”는 반발에 부딪혀 진전이 없는 상태다.

손애리 삼육대 보건관리학과 교수는 “한국에선 아직 야외 음주 문화가 만연해 있는 상태라 무작정 강경책으로 단속만 해선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홍보와 계도를 병행하며 점진적으로 공공장소 음주를 줄여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음주 심신장애 감경 제외’ 법안 5건, 처리는 ‘0’


국회 무관심, 법사위 논의조차 안돼
법무부는 ‘법관 양형재량 제한’ 지적

21대 국회에서 음주로 인한 ‘심신장애’를 감형 사유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형법 개정안이 연이어 발의됐지만 아직까지 상임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음주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를 엄중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지만 국회의 무관심과 관계 부처의 반대로 입법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2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음주로 인한 심신장애자를 형 감경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담은 형법 개정안은 21대 국회에서 5건이 발의됐다. 각 법안의 구체적인 문구는 조금씩 다르지만 ‘주취 감형’을 폐지 또는 제한하는 것이 핵심이다.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2020년 6월 대표 발의한 형법 개정안은 ‘음주나 마약류에 의한 심신장애자의 행위는 (형법 제10조) 2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이 담겼다. 형법 제10조 2항은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 변별 및 의사 결정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국민의힘 최춘식 의원이 1월 대표 발의한 형법 개정안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의 경우 각 죄의 최장 형기 및 벌금액의 2배까지 가중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이 법안들은 본회의 통과는커녕 관련 상임위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법사위 관계자는 “법사위는 처리해야 할 다른 상임위 법안이 워낙 많아 법사위 고유 법안 논의도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며 “형법 개정안의 경우 법관의 양형 재량을 지나치게 제한할 수 있다는 법무부의 지적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
이윤태 기자 oldspor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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