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이 주로 시청하는 TV 프로그램에서 자해를 묘사하는 내용이 방영된 후 응급실에 10대 자살, 자해 환자가 급증했다는 국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에선 자해와 관련한 내용을 다룰 때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김효원, 이태엽 교수와 융합의학과 김남국 교수는 국가응급진료정보망(NEDIS)을 활용해 2015년 1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자해(자살 기도 등)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 11만5647명을 분석한 결과, 2018년 3월 30일을 기점으로 관련한 청소년 환자가 늘었다고 밝혔다.
자료: 김효원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이 국가응급진료정보망을 통해 분석.
연구진에 따르면 2018년 3월 30일은 청소년을 주 시청층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Mnet의 ‘고등래퍼2’ 프로그램 6회가 방영된 날이다. 이날 방송에서는 자책감과 자해 충동으로 인한 내적 갈등을 다룬 곡이 발표됐다. 가사에서 손목을 긋는 등의 자해 행동을 직·간접적으로 묘사했다.
같은 기간 15~19세 자해 환자는 인구 10만 명당 5.7명에서 10.8명으로, 20~24세는 7.3명에서 11명으로 각각 늘었다.
자료: 김효원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이 국가응급진료정보망을 통해 분석.
연도별 분석 결과에서도 비슷한 경향성이 나타났다. 10~14세 청소년 자해 환자는 2015년 인구 10만 명당 8.1명에서 2018년 31.1명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15~19세는 63.5명에서 119명으로, 20~24세는 75.7명에서 127.1명으로 각각 늘었다. 이런 경향성은 여성 청소년에서 더 두드러졌다.
왼쪽부터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김효원·이태엽, 융합의학과 김남국 교수. 서울아산병원 제공.
김 교수는 “미디어 속 자해 콘텐츠는 청소년기 아이들에게 ‘자해는 해도 되는 것’ 혹은 ‘자해는 멋있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라며 “미디어에서 표현의 자유는 존중돼야 하지만 미디어가 청소년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사회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