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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론/정구민]전기차가 한국 산업의 미래를 이끌게 하려면

입력 | 2023-05-04 03:00:00

美 IRA, 中 보호 정책으로 전기차 경쟁 치열
K칩스법 통과됐지만 국내 투자 활성화엔 한계
공장 설립 지원, 세액 공제 늘려 경쟁력 높여야



정구민 국민대 전자공학부 교수


올해 1분기 현대차·기아는 6조5000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면서 도요타를 제치고 폭스바겐에 이어 자동차사 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여파는 우리 자동차 생태계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작년 8월 미국의 IRA 실행 이후 현대차 아이오닉5의 판매량은 작년 2분기 7448대에서 3분기 4800대로 급감했다. 올해 1분기 현대 아이오닉5와 기아 EV6의 미국 판매량도 전년 동기와 비교하여 각각 8.1%, 35.8% 감소하기도 했다.

극단적인 전기차 보호정책으로 전기차 산업을 키워 왔던 중국에 이어, 미국이 IRA로 보호무역을 강화하면서 우리나라 산업에는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 종합 산업인 자동차 산업 특성상 관련 부품사 등 전체 생태계가 미국으로 옮겨가는 큰 위기도 현실화되고 있다. 현대차·기아, 현대모비스, LG에너지솔루션 등 우리 업체들의 투자가 미국에 집중되는 상황이다.

미국 IRA는 미국 전기차 산업을 위한 채찍과 당근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에서 생산되지 않은 차량에는 7500달러의 보조금을 주지 않는 ‘채찍’과 함께 전기차 제조시설에 대해서는 30%의 세액 공제라는 ‘당근’을 제공한다. IRA는 자동차 산업의 대전환 시기에 주요 업체들의 미국 투자를 유도하면서, 미래 산업을 선도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정책이다. IRA에 따라 미국 업체 위주의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는 가운데 IRA 조건은 해마다 강력해진다.

최근에는 유럽도 핵심원자재법(CRMA)과 탄소중립산업법(NZIA)으로 대응에 나섰다. 미국 IRA만큼 강력한 법안은 아니지만, 유럽의 산업 생태계 보호를 위해 나섰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크다. 후발 국가들도 전기차 산업 육성에 적극 노력하고 있다.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23에서 전기차를 선보인 베트남과 튀르키예를 비롯해서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등도 산업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연기관 차량보다 상대적으로 쉬운 전기차 산업 육성을 통해서 미래 산업 경쟁을 대비한다는 전략이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떨까?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이 통과되기 전에는 전기차 공장을 새로 짓게 되면 1%의 세액 공제를 받는 데 그쳤다. 이런 까닭에 글로벌 업체 진입이 전무한 상황이며, 현재 신설 중인 공장도 현대차그룹의 울산, 화성, 광명 공장 단 3곳에 불과하다. 업계에서는 K칩스법을 통해서 국가전략기술의 경우 최대 25%의 세액 공제 혜택을 제공하지만, 연구개발(R&D) 분야가 아닌 일반 전기차 생산 시설은 단 3%의 세액 공제로 제한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 IRA의 30% 세액 공제 혜택과 비교할 때 국내 투자 활성화를 유도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는 평가다.

전기차 산업은 타 산업의 발전을 이끄는 미래 전략 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CES 2023에서 주목해야 할 기술 동향을 발표한 CTA의 스티브 쾨니히 부사장은 ‘전기차 산업이 선박, 도심항공교통(UAM), 로봇 등 타 산업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면서, 전기차 기술의 타 산업 확산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2022 테슬라 인공지능(AI) 데이에서도 모터, 배터리, 프로세서 등 전기차 기술 기반의 휴머노이드 로봇 설계가 선보였다. 전기차는 실내 공간 설계를 자유자재로 가져가면서 우리나라가 앞서 있는 정보기술(IT), 디스플레이 및 가전 산업과도 동반 성장이 가능하다. 이처럼 전기차 산업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은 단순한 자동차 산업을 지원하는 것이 아닌 우리나라 미래 산업 발전을 이끄는 전략이 된다.

관련 전문가들은 세액 공제 30% 확대와 수도권 공장 설립 지원을 시급한 이슈로 들고 있다. 특히 세액 공제 확대는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된다. 10초 내에 승부가 갈리는 100m 달리기에서 경쟁 국가들은 이미 10m 앞으로 출발선을 옮겨 놓은 셈이다. 최소한 동일선상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세제 혜택을 늘려 달라는 게 업계의 공통적인 요청이다.

코로나19 이후 국가 정책적인 방향은 산업 흐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수요에 비해서 크게 부족했던 자동차 공급량은 2023년을 지나면서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만들면 팔리는 시대가 아닌 본격적인 기술 경쟁이 예상된다. 더 늦기 전에 미래 산업을 이끄는 전기차 산업에 대한 정책적인 지원을 빨리 가져가야 할 필요가 있다. 모쪼록 절박한 산업계의 목소리에 관련 부처가 귀를 기울여서, 산업계와 정부의 유기적인 협력으로 우리나라 업체들이 미래 산업의 발전을 주도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정구민 국민대 전자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