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생명의 탄생은 분명 축복이다. 허나 독일 화가 오토 딕스는 갓 태어난 자신의 아들을 못생기고 기괴한 모습으로 묘사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화가는 왜 이런 모습으로 그린 걸까?
딕스는 1, 2차 세계대전부터 독일의 패전과 분단 등 독일 역사에서 가장 격동적인 시대를 살았던 화가다. 참전해 최전방에서 싸우며 직접 목격한 전쟁의 참상을 진솔하면서도 풍자적으로 표현한 그림으로 유명하다. 인생에 비극만 있지는 않은 법. 1927년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 있던 해였다. 모교인 드레스덴 미술아카데미의 교수가 되었고, 바라던 아들도 얻었다. 딕스는 아들 우르수스가 태어난 후 가족 초상화 연작을 시작했는데, ‘예술가의 가족(1927년·사진)’이 대표작이다. 딕스는 화면 구성을 위해 고전시대 성모자상을 참조했음이 분명하다. 성모가 아기 예수를 무릎 위에 안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구도를 취하고 있다. 성 요셉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화가 자신을, 세례자 요한 자리에는 딸 넬리를 그려 넣었다. 한데 어린아이는 아기답지 않게 섬뜩한 눈빛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화면 밖 관객을 응시하며 우리의 시선을 끄는 건 넬리의 눈빛과 손이다. 천진한 표정으로 붉은 카네이션을 동생에게 건네고 있다. 전통적인 성모자상에서 성모가 아기 예수에게 건네는 이 꽃은 예수의 수난을 상징한다. 딕스는 엄마가 아닌 누이가 동생에게 꽃을 전하는 것으로 묘사함으로써 전쟁이 같은 세대가 괴물이 되어 서로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끔찍한 비극임을 고발하고 있다.
폭력의 시대에 태어난 아이는 축복일까? 딕스는 아이들이 짊어질 가혹한 운명을 예수가 겪었던 고난에 비유하고 있다. 실제로도 나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홀로코스트의 비극이 시작됐고, 결국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딕스 역시 퇴폐미술가로 낙인찍혀 해직됐다. 그럼에도 아이의 탄생은 기쁜 것. 아비는 활짝 이를 드러내고 그저 웃을 뿐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