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첨예해져 국민피해 우려”
대통령실이 지난달 27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의사협회(의협)가 부분 파업에 나서는 등 간호법으로 인한 의료계 직역 간 갈등이 의료대란으로 번질 조짐이 보이자 거부권 행사로 기울고 있는 것.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3일 “간호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견이 대통령실 내부에서 커지고 있다”며 “직역 간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어 재의요구권 행사 기준에 해당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당초 대통령실은 간호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엔 매우 조심스러운 기류였다. 간호법을 여야 합의 없이 야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였지만, 윤 대통령이 지난달 양곡관리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상황에서 잇따른 거부권 행사가 국정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7일 총파업을 예고한 의협,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13개 보건의료 단체가 이날 연가 투쟁에 나서는 등 의료 현장의 파행이 현실화하면서 대통령실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한 대통령실 참모는 “국민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상황까지 번진다면 정부 입장에선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간호법을 둘러싼 갈등의 핵심은 간호사가 일하는 영역을 기존 의료기관에 더해 ‘지역사회’로 확대한 데 있다. 의협은 “간호사가 헬스케어센터 등을 단독 개원할 길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간협은 “의료법상 의사만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도록 돼 있어 확대해석은 억지”라고 반박하고 있다.
대통령실 “간호법 갈등에 국민 피해 우려… 거부권 대상 해당”
尹, ‘간호법 거부권’ 행사 가닥
“의료 현장과 조율”서 입장 변화, 의협 등 연가투쟁 돌입… 갈등 폭발
잇단 거부권 부담… 與, 새 법안 검토
‘간호사 업무 범위’ 쟁점 조정이 핵심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에 신중한 입장이던 대통령실이 거부권 행사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의사와 간호사 간 직역 갈등이 파업 등 집단행동으로 이어져 의료계 대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당초 대통령실은 지난달 말 간호법이 국회에서 야당 주도로 강행 처리된 뒤에도 줄곧 거부권 행사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며 “의료 현장과 조율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이후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간무협) 등이 3일과 11일 연가투쟁을 예고하고, 17일엔 연대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하면서 입장에 변화가 생긴 것으로 풀이된다.“의료 현장과 조율”서 입장 변화, 의협 등 연가투쟁 돌입… 갈등 폭발
잇단 거부권 부담… 與, 새 법안 검토
‘간호사 업무 범위’ 쟁점 조정이 핵심
● 여권 “거부권 행사하고 새 간호법 처리”
다만 대통령실 입장에서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연이어 거부권을 행사하기엔 “국회 입법권을 무시한다”는 비판이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4일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첫 거부권을 행사했고 앞으로도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 3조 개정안), 방송법 등 야당 주도의 법안에 대해 거부권 카드를 꺼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에 정부 여당은 야당 및 대한간호협회(간협)와 추가로 논의를 거쳐 새로운 간호법 제정안을 입법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강행 처리된 간호법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대신 여당이 야당과 협의해 새 법안을 내는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 관계자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정이 냈던 중재안을 바탕으로 야당, 간호협회와 다시 협의할 예정”이라며 “여야가 서로 타협해서 새 법안을 처리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 핵심 쟁점은 ‘간호사 업무 범위’
의협과 간무협 등 13개 의료계 직역단체가 연합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각각 다른 배경에서 간호법 제정안에 반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간협은 “가짜 뉴스”라고 맞받아치고 있다. 간호법상 간호사의 업무는 ‘의사의 지도하에’ 수행하는 진료의 ‘보조’라고 명시돼 있기 때문에 단독 개원이나 타 직역 업무 침해는 불가능하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간협은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라 해도 별도의 교육 과정을 거친 경우엔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 자격이 생기므로 차별이 아니다”라고 반박하고 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이윤태 기자 oldspor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