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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올해 만기 빌라 10만채중 6만채 ‘역전세’ 비상

입력 | 2023-05-04 03:00:00

[커지는 ‘역전세 대란’ 우려] 2년전 계약 전국 10만6728채 분석
이달부터 전세보증 문턱 높아지고
전셋값 급락에 역전세 속출 우려
세입자들 보증금 떼일까 전전긍긍




서울 강동구 A 빌라(전용면적 40㎡)에 사는 직장인 황모 씨(35)는 올해 9월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전세보증금을 떼일까 봐 밤잠을 설치고 있다. 인근 빌라 시세가 많이 떨어져 2년 전 자신의 전세금(3억6000만 원)에 맞춰 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할 수 있을지부터가 걱정이다. 세입자가 나와도 이달부터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보험’(전세보험) 가입이 까다로워져 자신의 전세금보다 2000만∼3000만 원 싸게 계약해야 한다. 그는 “집주인이 전세금 차액만큼의 현금을 따로 마련해 줘야 하는데 여력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올해 말까지 계약 만기가 돌아오는 전국 빌라 10채 중 6채꼴로 집주인이 보증금을 낮춰 계약하지 않으면 기존 세입자가 전세금을 떼일 우려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빌라의 현재 보증금만 13조 원이 넘고 이 중 2조4000억 원을 집주인이 추가로 부담해 기존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최근 전세사기가 속출하며 전세보험 없이 신규 세입자를 구하는 게 어려워진 데다 전세가 하락세가 가팔라지며 집주인들이 기존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역(逆)전세난’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동아일보가 1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등록된 2년 전(2021년 5∼12월) 빌라(연립·다세대) 전월세 17만815채를 전수 분석한 결과 전세 10만6728채(공시가격 없는 주택은 제외)의 62.6%인 6만6797채는 기존 전세금으로 전세보험 신규 가입이 불가능할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보험 가입이 안 되는 빌라는 전세금을 떼일 경우 보증기관에서도 이를 받을 수 없어서 전월세 계약이 사실상 힘들다.

이들 빌라의 기존 보증금 총액은 13조3188억 원이다. 전세보험에 가입하려면 이 중 2조4122억 원을 집주인들이 기존 세입자들에게 내줘야 한다. 10채 중 6채는 빌라 1채당 보증금을 평균 3611만 원 낮춰야 전세보험 가입이 된다는 의미다. 만약 집주인들이 현금 여력이 없어 이 돈을 마련하지 못하면 전세금을 떼이는 세입자가 늘 수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재 빌라 전월세 시장은 전세보험 가입이 안 되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올해 하반기(7∼12월)부터 미반환 사고가 늘어날 우려가 크다”며 “전세사기 방지책 외에도 신규 세입자를 받기 위한 보증금 감액분만큼 대출 규제 완화 등의 역전세난 대책이 시급하다”고 했다.




‘역전세 위험’ 빌라, 강서 85%-미추홀 73%… 수도권에 몰려


전국 역전세 우려 6만6797채 중 수도권 빌라가 6만530채 차지
전세사기 피해 큰 지역 비율 높아… 세입자들 전셋값 하락 피해 떠안아
영세 임대사업자 ‘줄파산’ 우려도

전세사기로 빌라 전월세 시장이 얼어붙으며 보증금 미반환 등 역전세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지방보다 수도권에서 역전세 우려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대차법 시행 이후 최근 2, 3년 사이 수도권 빌라 가격이 급등하면서 2년 전 비교적 높은 금액에 전세 계약을 했다가 최근 전세가격이 떨어지면서 그 피해를 빌라 세입자들이 떠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지방보다 수도권 역전세 우려 높아

동아일보가 1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역전세 우려가 높은 빌라는 올해 계약 만기를 앞둔 빌라 9만4951채 중 6만530채로 63.7%로 나타났다. 반면 5개 광역시와 지방의 역전세 우려 빌라 비중은 각각 51.6%, 55.9%였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금 반환 보증보험(전세보험) 가입이 안 되는 주택은 신규 전월세 계약이 힘들다는 점을 감안해 역전세 여부는 전세보험 가입이 가능한지로 판단했다. 동아일보는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등록된 2021년 5∼12월 빌라(연립, 다세대) 전월세 17만815채 중 순전세 거래 10만6728채의 당시 보증금과 공시가격에 HUG가 이달부터 시행한 전세보험 신규 가입 기준을 적용해 비교했다. 현재 전세금이 공시가격의 126% 이하일 경우에만 전세보험 가입이 가능하다. 올해 빌라 공시가격은 지난해 공동주택 공시가격 1453만6936개에 올해 빌라 공시가격 평균 인하율(6%)을 대입해 추산했다.

수도권의 경우 전세보험 가입을 위한 보증금과 기존 보증금의 차액은 총 2조2978억 원으로 빌라 한 채당 평균 3796만 원이었다. 서울에서 보증금을 내리지 않을 경우 전세보험 가입 불가 빌라 비중은 61.1%로 수도권보다 낮았다. 하지만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보증금은 빌라 한 채당 4316만 원으로 더 많았다.




● 서울 강서구 빌라 85% 전세보증 가입 안 될 듯

전세사기 피해가 컸던 지역에서 전세보험 가입 불가 빌라 비중도 높았다. 서울 강서구는 올해 계약이 끝나는 빌라 5818채 중 85%에 이르는 4953채가 전세보험 신규 가입이 불가능했다. 인천 미추홀구 역시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빌라의 73%가 전세보험 가입 거절 대상이었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전세사기 의심 거래가 많이 발생한 지역은 서울 강서구(166건)와 인천 미추홀구(61건)가 1, 2위였다.

임대사업자가 ‘줄파산’하며 빌라 전월세 시장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빌라와 소형 나 홀로 아파트 20채로 임대사업을 하는 A 씨는 빌라 매매가와 전세가가 동반 하락하고, HUG의 전세보험 가입 기준이 강화되며 진퇴양난에 빠졌다.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보증금이 늘면서 2021년 유방암 판정을 받은 뒤 받은 보험 진단금 5000만 원과 주식, 적금 등 여윳돈까지 이미 보증금 반환에 쓴 상태다. 여기에 올해 7월까지 돌아오는 재계약이 5건이라 두 달 안에 2억6000만 원을 추가로 마련해야 한다. 임대주택 의무 기간에 묶여 매매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금을 마련할 길이 막막한 상태다. 그는 “2018년 3월 등록임대사업자가 되면 혜택이 많다는 정부 홍보에 임대 사업을 시작하며 보증금 증액 제한 규정(매년 5%)도 지켰다”며 “당장 내년에도 전세 만기가 돌아오는 계약이 8건인데 이런 상황이 되니 난감하다”고 했다.




● ‘엎친 데 덮친 격’ 역전세난… “보증금 미반환 사태 불 보듯”

더 큰 문제는 지금 빌라 전월세 시장이 거래 자체가 끊기며 전세 세입자를 찾기 힘든 상황이라는 점이다. 집주인들이 돈을 일부라도 융통해 다음 세입자를 찾는다면 다행이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보증금 전액을 돌려줘야 한다. 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급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전세사기 문제가 불거진 지난해 하반기(7∼12월) 이후 빌라 전셋값은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전국 빌라 전세가격지수는 지난해 7월 0.05% 상승을 마지막으로 올해 3월(―0.34%)까지 8개월 연속 추락했다.

안성용 한국투자증권 부동산팀장은 “전세 수요가 급감해 세입자를 찾기도 어렵고, 운 좋게 세입자를 구해도 보증금을 낮춰야 한다”며 “빌라 집주인들은 대부분 영세 규모여서 현금 여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주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대로라면 빌라 세입자들의 보증금 미반환 피해가 추가 확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집주인이 다주택자인 경우 전세 보증금 반환 목적의 대출 규제를 완화해 보증금 미반환 리스크를 낮추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박진백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장기적으로 보증금 예치 제도를 도입해 집주인의 보증금 예치를 의무화하거나, 보증금을 사용할 경우 집주인이 전세보험에 가입하게 하는 등 보증금 미반환 위험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송진호 기자 jino@donga.com
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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