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역전세 대란’ 우려] 2년전 계약 전국 10만6728채 분석 이달부터 전세보증 문턱 높아지고 전셋값 급락에 역전세 속출 우려 세입자들 보증금 떼일까 전전긍긍
서울 강동구 A 빌라(전용면적 40㎡)에 사는 직장인 황모 씨(35)는 올해 9월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전세보증금을 떼일까 봐 밤잠을 설치고 있다. 인근 빌라 시세가 많이 떨어져 2년 전 자신의 전세금(3억6000만 원)에 맞춰 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할 수 있을지부터가 걱정이다. 세입자가 나와도 이달부터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보험’(전세보험) 가입이 까다로워져 자신의 전세금보다 2000만∼3000만 원 싸게 계약해야 한다. 그는 “집주인이 전세금 차액만큼의 현금을 따로 마련해 줘야 하는데 여력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올해 말까지 계약 만기가 돌아오는 전국 빌라 10채 중 6채꼴로 집주인이 보증금을 낮춰 계약하지 않으면 기존 세입자가 전세금을 떼일 우려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빌라의 현재 보증금만 13조 원이 넘고 이 중 2조4000억 원을 집주인이 추가로 부담해 기존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최근 전세사기가 속출하며 전세보험 없이 신규 세입자를 구하는 게 어려워진 데다 전세가 하락세가 가팔라지며 집주인들이 기존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역(逆)전세난’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동아일보가 1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등록된 2년 전(2021년 5∼12월) 빌라(연립·다세대) 전월세 17만815채를 전수 분석한 결과 전세 10만6728채(공시가격 없는 주택은 제외)의 62.6%인 6만6797채는 기존 전세금으로 전세보험 신규 가입이 불가능할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보험 가입이 안 되는 빌라는 전세금을 떼일 경우 보증기관에서도 이를 받을 수 없어서 전월세 계약이 사실상 힘들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재 빌라 전월세 시장은 전세보험 가입이 안 되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올해 하반기(7∼12월)부터 미반환 사고가 늘어날 우려가 크다”며 “전세사기 방지책 외에도 신규 세입자를 받기 위한 보증금 감액분만큼 대출 규제 완화 등의 역전세난 대책이 시급하다”고 했다.
‘역전세 위험’ 빌라, 강서 85%-미추홀 73%… 수도권에 몰려
전국 역전세 우려 6만6797채 중 수도권 빌라가 6만530채 차지
전세사기 피해 큰 지역 비율 높아… 세입자들 전셋값 하락 피해 떠안아
영세 임대사업자 ‘줄파산’ 우려도
전세사기 피해 큰 지역 비율 높아… 세입자들 전셋값 하락 피해 떠안아
영세 임대사업자 ‘줄파산’ 우려도
● 지방보다 수도권 역전세 우려 높아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금 반환 보증보험(전세보험) 가입이 안 되는 주택은 신규 전월세 계약이 힘들다는 점을 감안해 역전세 여부는 전세보험 가입이 가능한지로 판단했다. 동아일보는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등록된 2021년 5∼12월 빌라(연립, 다세대) 전월세 17만815채 중 순전세 거래 10만6728채의 당시 보증금과 공시가격에 HUG가 이달부터 시행한 전세보험 신규 가입 기준을 적용해 비교했다. 현재 전세금이 공시가격의 126% 이하일 경우에만 전세보험 가입이 가능하다. 올해 빌라 공시가격은 지난해 공동주택 공시가격 1453만6936개에 올해 빌라 공시가격 평균 인하율(6%)을 대입해 추산했다.
수도권의 경우 전세보험 가입을 위한 보증금과 기존 보증금의 차액은 총 2조2978억 원으로 빌라 한 채당 평균 3796만 원이었다. 서울에서 보증금을 내리지 않을 경우 전세보험 가입 불가 빌라 비중은 61.1%로 수도권보다 낮았다. 하지만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보증금은 빌라 한 채당 4316만 원으로 더 많았다.
● 서울 강서구 빌라 85% 전세보증 가입 안 될 듯
● ‘엎친 데 덮친 격’ 역전세난… “보증금 미반환 사태 불 보듯”
더 큰 문제는 지금 빌라 전월세 시장이 거래 자체가 끊기며 전세 세입자를 찾기 힘든 상황이라는 점이다. 집주인들이 돈을 일부라도 융통해 다음 세입자를 찾는다면 다행이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보증금 전액을 돌려줘야 한다. 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급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전세사기 문제가 불거진 지난해 하반기(7∼12월) 이후 빌라 전셋값은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전국 빌라 전세가격지수는 지난해 7월 0.05% 상승을 마지막으로 올해 3월(―0.34%)까지 8개월 연속 추락했다.
안성용 한국투자증권 부동산팀장은 “전세 수요가 급감해 세입자를 찾기도 어렵고, 운 좋게 세입자를 구해도 보증금을 낮춰야 한다”며 “빌라 집주인들은 대부분 영세 규모여서 현금 여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주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대로라면 빌라 세입자들의 보증금 미반환 피해가 추가 확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집주인이 다주택자인 경우 전세 보증금 반환 목적의 대출 규제를 완화해 보증금 미반환 리스크를 낮추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박진백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장기적으로 보증금 예치 제도를 도입해 집주인의 보증금 예치를 의무화하거나, 보증금을 사용할 경우 집주인이 전세보험에 가입하게 하는 등 보증금 미반환 위험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송진호 기자 jino@donga.com
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