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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4차 산업혁명시대 20년 된 실험장비 쓰는 대학들

입력 | 2023-05-05 00:00:00


대학 생명과학부 실험실에 첨단 현미경이 없다. 연구실 컴퓨터엔 산업현장에선 쓰지 않는 구식 프로그램만 깔려 있다. 개인 실험실이나 연구실이 없는 교수들도 있다. 지역과 국가 발전을 견인해야 할 대학의 교육과 연구 여건이 악화일로다. 정부의 재정 지원이 미미한 가운데 대학 재원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등록금이 15년째 동결되면서 고등교육 인프라가 공과금 내기도 힘든 수준으로 무너지고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전국 4년제 사립대의 실험 실습비 예산은 2011년 2144억 원에서 2021년엔 1501억 원으로 10년간 30% 감소했다. 이공계 연구실에 20년 된 실험장비가 가득하고, 일부 초중고교에선 매년 교체하는 컴퓨터나 빔프로젝터 같은 시청각 장비를 10년째 쓰고 있는 대학이 수두룩하다고 한다. 실습실 컴퓨터엔 초기 버전의 프로그램들만 깔려 있어 학생들 사이에선 “취업하면 다시 배워야 한다”는 불만이 나온다. 가스료 전기료 납부도 어려운 지경이라 건물 개보수는 엄두도 못 내고 있어 학생들이 “등록금 올려도 좋으니 화장실 고쳐 달라”고 요구할 정도다.

우수 인재 확보에도 어려움이 크다. 2021년 전국 사립대 전임교원 1인당 평균 연구비는 835만 원으로 10년 전보다 31% 줄었다. 거점 국립대 조교수 연봉이 5000만 원으로 대졸 신입사원 수준이다. 국립대와 달리 정부의 인건비 지원을 못 받는 지방 사립대는 최저시급 수준인 월 200만∼250만 원을 받는 교수들도 많다. 일부 사립대는 수년째 정년 보장이 안 되는 교원만 충원해 인건비를 줄이고 있다. 첨단 분야 학과를 신설한 서울의 모 대학은 실리콘밸리에서 우수 교원을 초빙하려다 실패했다. 연봉이 실리콘밸리 수준의 3분의 1도 안 되는데 누가 오겠나.

한국 대학생 1인당 공교육비 지출액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의 64%다.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작은 폴란드 헝가리 에스토니아보다도 적다. 정부는 대학에 지원은커녕 대학 자율화한다면서 등록금 규제 하나 풀지 않는다. 선진국은 앞서가고 우린 뒷걸음치면서 대학 경쟁력이 초격차로 벌어지고 있다. 20년 된 장비를 끌어안고 버티는 대학으로 어떻게 첨단기술을 개발하고 4차 산업혁명을 하겠다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