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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을 가르치는 심정으로[이기진 교수의 만만한 과학]

입력 | 2023-05-05 03:00:00

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중간고사가 끝났다. 한 학기의 반이 지났다. “벌써”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지만, 인간이 발명한 시간의 연속적인 흐름 속에서 보면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 불쑥 찾아온 것은 아니다. 학생으로서는 중간고사라는 평가가 고통스러운 일일지 모르지만, 가르치는 사람으로서는 필요한 과정이다. 내가 잘 가르치고 있는가? 학생들이 잘 따라오는가? 학기 말까지 어떻게 학생들과 소통해야 할까?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학생들의 시험지를 통해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학생들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을 책임지고 있는 나 자신을 평가하는 귀중한 시간이다.

학생들은 일방적으로 성적표를 받아들지만, 교수들은 성적을 줄 때 고민을 하게 된다. 상대평가를 통해 학생들을 도토리 줄 세우듯 일렬로 줄을 세워야 한다. 말 그대로 도토리 키 재기. 정말 어려운 시간이다. 전혀 못 따라오면 낙제점 F를 줘서 다음에 다시 듣게 하면 된다. 이 정도는 알고 졸업을 했으면 하는, 가르치는 사람의 마음이 담긴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뭐 당사자는 기분이 나쁘고 힘들겠지만.

다음으로 70명의 학생을 상대평가하는 문제가 기다린다. 1등과 2등의 차이를 구분해야 한다. 점수 1점 차, 더 작으면 0.1점 차로 누구는 A를 받고 누구는 B를 받는다. 이런 해괴한 잣대를 가진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답답한 노릇이지만, 룰이 그렇다.

1점 차로 승자가 되어 1등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즐길 수 있는 시간은 봄바람처럼 지극히 짧다. 다음 기말고사가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 인간이 발명한 시간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1점 차로 F를 받은 학생은 결과를 빨리 잊고 죽어라 공부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달리 방도는 없다.

나는 물리학을 좋아했지만 진지하게 집중하지 못한 채 학창시절을 보냈다. 시험을 보기 위해 전공 책을 들여다보는 정도로만 공부했다. 하지만 졸업할 즈음 ‘공부를 해보자’ 하는 생각이 든 이후에는 그 누구도 못 말리는 공붓벌레가 되었다. 뒤늦게 공부의 재미를 발견한 후발주자라고나 할까. 그 열정으로 지금까지 달리고 있다. 시험 하나하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공부는 자신의 열정을 혼자서 깨쳐 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아인슈타인은 학창 시절의 성적이 어땠냐는 질문에 뛰어나지도. 그렇다고 못하지도 않은 애매한 성적의 학생이었다고 고백했다. 그의 약점은 기억력이 매우 나쁜 것이었다. 단어와 문장을 외우는 일은 그에게 정말 힘든 일이었다. 당시 그는 희랍어 선생님에게서 “너는 아무것도 될 수 없을 거야”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선생님의 이런 혹독한 잔소리는 그를 바꿔놓지도, 분발하게 하지도 못했다. 그의 재능은 다른 곳에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그가 좋아하는 수학과 물리학에서만큼은 남달랐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독학으로 학교 진도보다 앞서 나갔다. 지적 호기심과 흥미, 열정은 그를 앞으로 나가게 한 엔진이었다. 그에게 희랍어 선생님의 잔소리는 연료를 낭비하고 공해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공회전’이 아니었을까? 아인슈타인을 가르치는 심정으로 기말시험까지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