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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2시간15분 벽 깬 마라토너, 인생을 돌고 돌아 ‘건강 전도사’ 됐다[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입력 | 2023-05-06 12:00:00


“가수로 활동하던 2000년 한 TV 방송에 출연해 건강에 대해서 얘기한 적이 있어요. 담당 PD가 ‘당신 가수 하지 마라. 공부해서 마라톤 전도사가 돼라. 당신만큼 운동 처방 잘하는 사람 없다’고 했죠. 그래서 결심했어요. 참 먼 길을 돌아왔죠. 여러 일을 하면서 고생 많이 했어요. 마라톤으로 돌아오니 포근하고 행복했습니다. 제가 ‘2시간 15분 벽’을 깬 뒤 참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사랑을 국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해서 무료 마라톤 교실을 열게 됐습니다.”

이홍열 원장이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즐거운 표정으로 달리고 있다. 마라톤 국가대표 출신인 그는 은퇴 후 사업과 가수 활동 등을 하다가 2001년부터 ‘이홍열 마라톤 교실’을 열면서 ‘건강 전도사’로 돌아와 회원들과 함께 달리며 건강한 삶을 만들어 가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이홍열 운동치료연구원 원장(62)은 1984년 3월 18일 열린 제55회 동아마라톤에서 2시간 14분 59초로 ‘마의 2시간 15분 벽’을 깼다. 1974년 제45회 동아마라톤에서 문흥주가 세웠던 한국 최고 기록(2시간 16분 15초)을 10년 만에 1분 16초 앞당긴 대기록이었다. 10년 넘게 마라톤 국가대표로 활약하던 그는 선수 생활을 마친 뒤 다소 굴곡 있는 삶을 살았다. 지도자를 하다 건설과 경영컨설팅 사업에 뛰어들었다. 가수로도 활동하며 음반을 4개나 냈다. 하지만 2001년 모든 ‘외도’를 접고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 ‘이홍열마라톤교실’을 열면서 다시 마라톤인으로 돌아왔고 지금은 ‘건강 전도사’로 활약하고 있다.

이홍열 원장이 1984년 3월 제55회 동아마라톤에서 ‘마의 2시간 15분 벽’을 깰 때의 모습. 동아일보 DB.

“가수가 됐어도 제 타이틀은 항상 ‘전 마라토너’였죠. 현재의 직함이 없었어요. 전문가가 되기로 결심했죠. 무료 마라톤 교실부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전국적으로 마라톤 열풍이 불고 있을 때였어요. 마라톤 하다 다치는 사람이 많았고 심지어 사망에 이르기까지 해서 제대로 달리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이홍열’이 무료로 지도한다고 하자 사람들이 몰렸다. 한때 전국 18곳에서 무료 마라톤 교실을 운영했다. 1년 참가 연인원이 2만 명 가까이 되기도 했다. 여기저기서 무료 지도를 해달라는 요구를 감당하지 못해 달리면 즐겁다는 뜻으로 ‘런조이닷컴’이란 홈페이지를 만들어 다양한 마라톤 정보를 올리기도 했다.

이홍열 원장(왼쪽)이 회원에게 바른 자세로 달리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이홍열 원장 제공.

“달리는 게 쉬워 보이지만 동작이 잘못됐을 때 엄청난 악영향을 미칩니다. 42.195km 풀코스 완주는 아주 힘든 과정입니다. 무릎 연골이 닳거나 파열되고 관절 인대도 찢어지기도 합니다. 앞이나 뒤로 몸이 기울어지지 않고 꼿꼿하게 서서 보폭을 11자로 해서 달려야 합니다. 착지 때 무릎은 살짝 굽혀져 있어야 합니다. 약 165도로 굽혀주는 게 좋습니다. 팔도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흔들어야 하고요. 고개를 숙이고 달리면 흉부 갈비뼈를 눌러 호흡을 잘할 수 없어요. 그럼 오래 못 달려요. 준비운동과 정리운동도 잘해줘야 합니다. 대부분의 달림이들이 몸도 풀지 않고 바로 달리고 끝나고도 그냥 집으로 가죠. 아주 잘못된 습관입니다.”

이 원장은 ‘미스터 원칙’으로 불린다. 정석대로만 지도한다. 바른 자세로 즐겁게 달리도록 지도하는 게 제1원칙. 잘 달리는 마스터스 마라토너들의 실력을 업그레이드시키기도 했다. 이 원장의 지도로 각 대회에서 우승한 남녀 마스터스 마라토너가 많다. 모교 경희대에서 공부도 시작했다. “제대로 지도하려면 더 많이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2007년 스포츠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가대표 마라톤 선수 출신 ‘1호 박사’였다. 이 원장은 스포츠의학을 공부하며 척추 및 관절 전문가가 됐다.

이홍열 원장이 TV에서 강의하는 모습. 이홍열 원장 제공.

“약 25년 전이었어요. 허리 디스크 통증이 심해 병원에 실려 갔는데 병원 의사가 저를 알아보고 수술을 안 해주는 겁니다. 수술해도 소용없다는 겁니다. 참 양심적인 의사였죠. 그래서 집 근처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을 시작했어요. 꾸준히 운동하자 허리가 아프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인체를 공부하고 싶었고 마라톤으로 돌아온 뒤 스포츠의학을 공부하며 특히 허리 쪽에 집중해 연구했습니다.”

이 원장은 “디스크 환자 중 열에 아홉은 수술이 필요 없다. 운동으로 회복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디스크가 터진다고 알고 있는데 대부분 디스크가 밀고 나오면서 약해진 주변 근육이 신경을 건들면서 통증이 오는 것이다. 허리 주변 근육을 키워주는 운동을 꾸준히 해주면 통증은 사라진다”고 설명했다. ‘수술 없이 운동으로 척추를 건강하게 해준다’ 소식에 이 원장은 여러 방송에서 강연했고, 기업체와 지방자치단체에도 인기 강사로 활약하고 있다. 마라토너와 가수에서 ‘건강 전도사’로 변신한 것이다.

이홍열 원장(앞)이 회원들에게 바르게 달리는 법을 지도하고 있다. 이홍열 원장 제공.

이 원장의 박사 학위 논문 제목은 ‘RPE13에 의한 12분간 보행 테스트의 타당성’. 논문 제목만 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내용은 간단하다. RPE(Ratings of Perceived Exertion)란 주관적 운동 강도를 뜻한다. RPE13은 약간 힘들다고 느낄 정도의 운동 강도다. 그는 “RPE13 수준, 그러니까 약간 힘들다고 느낄 정도의 강도로 운동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강조한다.

“사람들이 달리기를 시작하고 중도에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과욕을 부리기 때문이에요. 자신의 수준은 고려하지 않은 채 무리한 강도로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죠. 반대로 너무 약한 강도로 운동을 하면 운동 효과를 볼 수 없고요. 마라톤 완주를 꿈꾸고 달리기에 입문했더라도 무리하지 않고 차근차근 자신의 수준에 맞게 운동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 원장은 잘못된 정보로 사기를 치는 ‘가짜 전문가’들을 퇴출시키는 데도 앞장섰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마사이’ 신발도 그가 퇴출시켰다.
“마사이 신발은 사람들의 움직임을 제한해 그 사람을 죽이는 역할을 합니다. 뒤꿈치가 올라가고 발가락 부분이 내려가 있는데 문제는 발가락 부분이 아주 딱딱하죠. 그럼 발가락이 움직이지 않아 운동능력을 상실합니다. 제가 이런 말 해서 난리가 났는데 결국 제가 이겼죠. 요즘 마사이 신발 신는 사람 있습니까?”

이홍열 원장이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원효대교 밑 ‘이홍렬 시민마라톤·걷기 교실 ’ 앞에서 엄지척을 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발바닥 아치를 잡아주는 일명 ‘교정 구(교정 깔창)’도 이 원장이 퇴출시켰다. 그는 “모든 게 자연적이어야 한다. 마라톤 선수 이봉주는 평발인데도 잘 달렸다. 축구선수 박지성도 평발에도 세계적인 선수가 됐다. 아치를 만들어 주면 발 기능이 상실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현재는 무료 마라톤 교실을 4곳으로 줄여 운영하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운동을 본격적으로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훈련한 뒤 술 한잔 먹는 재미로 오는 사람도 많았죠. 술만 마시면 좋은데 꼭 싸움이 일어나요. 그래서 많이 줄였습니다. 다 관리하기 힘들기도 했고요.”

최근엔 마라톤에 걷기를 추가했다. 그는 “마라톤을 하다 더 이상 못 달리는 분들을 위해 마련했다. 잘 걸으면 달리는 것만큼 운동 효과가 크다. 물론 마라톤 초보자들도 걷기부터 시킨다”고 했다. 그는 마라톤 및 걷기 교실을 돌아가며 함께 달리고 걸으며 지도하고 있다. 평소 피트니스센터에서 주당 3~4회 운동하고 있으니 사실상 거의 매일 걷고 달리고 있는 셈이다. 그는 “환갑을 넘긴 지금은 풀코스 완주는 아예 꿈도 꾸지 않는다. 5~10km 달리거나 2~3시간 10여 km를 걷는 것으로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며 웃었다.

이홍열 원장(가운데)이 1981년 열린 제52회 동아마라톤에서 우승한 뒤 시상대에서 서 있는 모습. 동아일보 DB.

이 원장에 대해 현재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스토리 하나. 그는 마라톤 선수론 ‘천재’에 가까웠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비교적 늦은 대전 대성고 1학년 때 육상에 입문한 그는 3학년 때 전국선수권대회 1만m에서 한국기록에 불과 0·1초 모자라는 좋은 기록을 작성하면서 육상계의 눈길을 끌었다. 이런 놀라운 성장에 그는 대학 대신 실업을 택해야 했다. ‘유망주’ 이홍열 덕분에 진로마라톤팀이 창단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1981년 제52회 동아마라톤에서 2시간21분23초로 우승했다. 이후 무리한 대회 출전과 훈련으로 부상을 입는 등 역경을 맞기도 했지만 경희대로 적을 옮겨 마의 2시간 15분 벽을 무너뜨렸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