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형준 사회부 차장
“초임검사는 아침에 밥총무 일밖에 안 한다. 가족 없이 지방에 온 검사들은 평소 혼자 밥먹으러 다니니까 점심을 먹을 때 맛있는 걸 먹고 싶어한다. 그런데 선배들마다 메뉴와 식당에 대한 요구사항이 다 다르다. ‘어제 술먹었으니 해장국집 가자’ ‘바쁘니 가까운 데서 먹자’ 등 아침마다 쪽지가 수십 개씩 온다. 이를 조율하다 보면 오전 시간이 다 간다.”
문제는 밥총무를 향한 ‘직장 내 갑질’을 동반했다는 점이다. ‘밥총무를 잘해야 기획도 잘한다’는 말은 갑질을 숨기기 위한 포장이었을 뿐이다. 말하는 사람보다는 지위가 높지만 듣는 사람보다 낮은 경우에 쓰는 ‘압존법’ 때문에 A 검사는 선배 B 검사로부터 수없이 많은 언어폭력을 당했다. “쪽지 때문에 매일 혼났다. 압존법이 틀렸다고 첫날 불려가 눈물이 쏙 빠지게 세 시간 동안 혼났다. 두 번째는 메신저의 글씨색이 분홍색이라고 또 혼났다. 세 번째는 ‘○○○ 선배 △△△ 선배’라고 써야 되는데 ‘○○○ △△△ 선배’라고 썼다고 ‘○○○가 네 친구냐’라고 혼났다. 기상천외한 이유로 계속 괴롭혀 머리가 다 빠졌다.” 압존법은 군대에서조차 2016년 폐지됐다.
이는 2018년 1월 취재파일에 적어둔 내용이다. 2017년 9월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밥총무를 폐지하라는 지시를 내린 이후에도 계속된 것이다. 아직도 밥총무는 상당수 남아 있다고 한다.
이후 A 검사는 출산을 한 뒤 복직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날이면 육아 때문에 오후 7시면 퇴근을 한다. 일이 많으면 출근을 일찍 하거나 밤에 다시 청사로 나온다. 아이가 아프거나 일이 생겼을 때 조퇴를 하거나 연차를 쓰겠다는 A 검사에게 부장검사는 못마땅하다는 듯 “부모님은 뭐하시길래 아이를 돌봐주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에 “내 새끼를 내가 키워야지, 왜 어른들이 봐주셔야 되냐”고 반박했다고 한다. 시댁과 친정 어른들은 거주지가 멀고 지병을 앓고 있어 아이를 맡길 수 없다.
최근 만난 A 검사는 업무에 보람과 재미를 느끼지만 승진은 포기했고 진로를 고민 중이라고 했다.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아닌 건 아니다’라고 하고, 육아휴직을 쓰고, ‘칼퇴근’을 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A 검사의 사례가 특수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악습과 폐단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곰팡이처럼 계속 피어난다. 인권수호기관을 자처하는 검찰은 ‘우리 안의 파시즘’을, 그리고 내부에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속 ‘연진이’가 없는지 늘 경계해야 한다.
황형준 사회부 차장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