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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강력한 지도자 전성시대… 언제 끝날지 예측 어렵다”

입력 | 2023-05-06 03:00:00

2000년 푸틴 당선되며 포문 열어… 시진핑 급부상하며 트럼프 등장
“바이든, 민주주의 수호 외치지만, 현재로선 미국도 상황 못 바꿀 것”
◇더 스트롱맨/기디언 래크먼 지음·최이현 옮김/408쪽·2만1000원·시공사



2019년 6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악수하는 모습. 저자는 2000년 푸틴이 러시아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부터 지금까지를 ‘스트롱맨의 시대’라고 규정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1999년 러시아 남성의 기대수명은 직전 해보다 4년 단축돼 58세까지 떨어졌다. 유엔 보고서는 그 원인으로 “빈곤율과 실업률, 재정 불안전성 증가”를 꼽았다. 러시아는 1998년 모라토리엄(지불 유예)을 선언했다. 러시아로부터 독립하려던 체첸공화국은 1999년 모스크바 일대 아파트에 폭탄 테러를 가했다.

바로 그때 연방보안국(FSB) 국장 출신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이 강력한 대통령 후보로 떠올랐다. 모스크바 아파트 테러 전 2%에 그쳤던 그의 지지율은 그해 11월 40%를 넘어섰다. 이 기간 러시아 언론은 “체첸으로 밀고 들어가라”고 명령하는 푸틴의 모습을 자주 실었다.

2000년, 21세기 시작과 동시에 푸틴은 러시아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외무 담당 수석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푸틴의 등장 이후 중국과 튀르키예(터키), 영국, 미국 등을 장악한 스트롱맨의 시대를 분석했다. 저자가 정의한 ‘스트롱맨’은 보수주의자이면서 민족주의자로, 소수자를 배척하고 국익만을 노골적으로 앞세우는 국가 지도자를 뜻한다. 책에는 스트롱맨 통치의 특징은 물론 앞으로의 전망을 담았다.

저자는 스트롱맨 시대가 세계적 현상으로 자리 잡은 건 2012년 시진핑이 중국 국가주석으로 집권한 뒤부터라고 봤다. 이전에도 러시아와 튀르키예에서 스트롱맨 통치가 싹텄지만 이들은 초강대국이 아니었다.

세계 경제와 안보 패권을 놓고 미국과 다투는 중국의 지도자로 시진핑이 급부상하면서 미국도 이에 맞설 더 강력한 스트롱맨을 원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저자는 “트럼프가 2016년 백악관에 입성한 사건은 이미 확립된 세계적 추세의 일부였을 뿐”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꼽은 스트롱맨의 공통점 중 하나는 ‘사법부 장악’이다. 이들에게 법은 반대파를 탄압하는 정치적 무기다. 푸틴은 2021년 반대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를 투옥했다. 시진핑은 집권 직후 반부패 운동을 벌인 운동가 100만여 명을 감옥에 가뒀다.

2016년 미국 대선에 나왔던 트럼프가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을 겨냥해 외친 구호는 “그녀를 가둬라”였다. 스트롱맨의 통치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삼권분립을 위협한다는 분석이다.

과연 스트롱맨의 시대는 끝날까. 저자의 답은 솔직하다.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 “독재자들로부터 민주주의를 지켜내겠다”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포부도 실현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미국의 경제력이 최고 수준이었던 과거와 달리 2019년 세계 최대 무역국은 중국이다. 2021년 바이든 정부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점령할 걸 알면서도 미군을 철수시켰다. 자유민주주의의 보루를 자처했던 냉전 시기처럼 미국이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는 환경이란 얘기다.

저자는 서구 정치평론가로서 스스로에 대한 자성도 담았다. 저자는 2014년 독재자 나렌드라 모디가 인도 총리에 올랐을 때 쓴 칼럼에서 “모디는 인도가 감수할 가치가 있는 위험”이라고 낙관했다고 한다. 수년 뒤 이 책을 펴낸 저자는 “서구 평론가들은 냉전 승리에서 비롯된 자유주의가 가진 힘에 대해 과신했다”며 자신의 오판을 인정했다. 원제는 ‘The Age of the Strongman(스트롱맨의 시대).’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