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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팩웨스트, 재정 건전한데도 주가 급락… “은행 신뢰 깨져 더 문제”

입력 | 2023-05-06 03:00:00

美‘팩웨스트’ 주가 또 폭락
다른 지역은행들에도 번져
작전세력 개입 여부 조사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은행 팩웨스트뱅코프 주가가 4일(현지 시간) 50% 폭락했다. 퍼스트리퍼블릭 은행 폐쇄 이후 사흘 연속 급락한 것이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가 1일 퍼스트리퍼블릭을 인수했지만 은행 위기가 진정되기는커녕 ‘다음 타자’로 거론되는 지역은행들의 주가가 급락하는 모양새다.

4일 뉴욕 증시에서 최근 시장이 지역은행 가운데 ‘약한 고리’로 주목하고 있는 팩웨스트 주가는 전날보다 50.42% 떨어진 3.17달러에 장을 마쳤다. 애리조나주 피닉스를 기반으로 하는 웨스트얼라이언스뱅코프(―38.45%)를 비롯해 시온스뱅코프(―12.05%) 코메리카은행(―12.28%) 등 다른 지역은행 주가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미 지역 은행 주가지수인 ‘KBW 지역은행 지수’도 전날 대비 3.51% 하락하며 사흘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특히 팩웨스트나 웨스트얼라이언스는 올 3월 파산한 실리콘밸리은행(SVB), 시그니처은행과는 달리 예금이 안정적이며 보유 채권 손실이 적고 자본이 충분한 상태다. 그런데도 주가가 급락하면서 은행 위기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미 규제당국은 지역은행의 주가 폭락 사태 배후에 공매도 세력의 ‘시장 조작’이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에 착수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미 금융분석업체 오르텍스에 따르면 이날 하루에만 지역은행 주가 하락에 건 공매도 투자자들이 3억7890만 달러(약 5077억 원)의 이익을 거뒀다.

커린 잔피에어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정부는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으며 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3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사우전드오크스에 있는 팩웨스트뱅코프은행 지점. 4일 팩웨스트의 주가는 전날 대비 50% 가까이 떨어지며 연일 하락세다. 3월 미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이후 SVB를 포함해 은행 3개가 파산하는 등 미 지역은행 위기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다. 사우전드오크스=AP 뉴시스




‘SVB 사태’ 이후 주가 88% 폭락
파월 “은행 시스템 견고” 강조에도
“작은 불꽃에도 위험 번질것” 불안감… 스탠퍼드 보고서 “190개 은행 위험”
美당국, 시장조작 가능성 조사
미국 금융당국이 퍼스트리퍼블릭 은행 사태를 빠르게 진화했는데도 팩웨스트뱅코프와 웨스트얼라이언스뱅코프 등의 주가가 4일(현지 시간)까지 사흘 연속 폭락하자 지역은행발(發) 위기 사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무엇보다 시장과 투자자들의 지역은행에 대한 신뢰가 바닥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은행이 3월 파산한 실리콘밸리은행(SVB)이나 1일 JP모건체이스에 인수된 퍼스트리퍼블릭에 비해 재정 상태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는 점도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팩웨스트는 전체 예금 75%가 예금 보증 한도(25만 달러) 이내이며 2일 기준 보유 현금 및 유동자산도 보증 한도 밖 예금액의 188% 수준으로 유동성이 우량하다. 퍼스트리퍼블릭이 90%에 이르던 고정금리 장기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상품 비율도 40%에 불과하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현재 지역은행은 마른 장작 위에 있는 것 같다. 작은 불꽃에도 위험한 불길로 번질 수 있다”고 전했다.

● “지역은행에 대한 투자자 신뢰 깨져”
팩웨스트는 이날도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려고 애를 썼다. 팩웨스트는 “27억 달러(약 3조5775억 원) 규모 대출을 매각 예정 자산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며 “퍼스트리퍼블릭 사태처럼 이례적 예금 (인출) 흐름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웨스트얼라이언스도 ‘자산 매각 검토’ 보도에 장중 주가가 62% 떨어지자 이를 즉시 부인하고 나섰다. 두 은행 주가는 5일 개장 전 거래에서 각각 26%, 15% 올랐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4일 팩웨스트 등이 건전한 재정 상태를 강조함에도 시장 안정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것은 지역은행에 대한 투자자 신뢰가 깨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전날 지역은행과 관련해 “JP모건의 퍼스트리퍼블릭 인수는 은행 위기에 선을 긋는 좋은 결과”라며 미 은행 시스템이 견고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 뒤 팩웨스트 주가는 시간외 거래에서 약 60% 떨어졌다. 자산 규모 2090억 달러(277조 원)로 미 16위 은행이던 SVB가 48시간 만에 파산한 것을 본 투자자들에게 지역은행의 미래 전망은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연준이 올해 금리 인하 가능성에 선을 그으면서 미국 경제 곳곳에서 신용 경색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은행 위기 확산에 대한 우려를 확산시키고 있다.

● “향후 190개 은행 도미노 파산” 우려도
공매도 세력이 지역은행 주가 폭락에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NYT는 “이번 소요(사태)는 주가 하락에 베팅한 공매도 세력에 의해 심화됐다”고 보도했다. 시장분석업체 S3파트너에 따르면 팩웨스트 총발행주식에서 공매도 물량 비율은 SVB 사태 당시 4%에서 18%까지 급증했다. 웨스트얼라이언스도 3%에서 8%에 육박하게 됐다. JP모건에 인수될 때 퍼스트리퍼블릭 공매도 물량은 약 36%였다. 웨스트얼라이언스는 이날 “재정적으로 건전하고 수익성 있는 은행을 (시장에) 거짓되게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 정부는 요동치는 지역은행 주가에 대한 ‘시장 조작’ 가능성에 메스를 들이대기로 했다. 주가 폭락이 지속되면 예금주들이 지역은행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수 있고 은행들도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워져 은행 위기가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게리 겐슬러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SEC는 시장을 위협할 수 있는 어떤 형태의 위법 행위도 확인해 고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조사 배경을 밝혔다. 공매도 세력에 의한 시장 조작 가능성을 들여다보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 스탠퍼드대 등이 지난달 발표한 ‘통화 긴축과 2023년 미국 은행 취약성’ 보고서는 은행 위기가 지속되면 미 은행 190개가 ‘도미노 파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