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차의 본향, 하동군 지리산 자락 온통 초록빛깔로 덮여… 올해 해차, ‘하동 차쟁이’ 사이 호평 국내 최대 규모 ‘하동세계차엑스포’… 7왕자 기념 사찰 ‘칠불사’도 볼거리 차와 문학의 만남 ‘토지문학제’ 열려… ‘베어빌리지’서 반달곰 재롱 볼 수도
경남 하동군 화개면의 차밭.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하동 야생차밭은 2017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의해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됐다.
《지리산 남쪽 자락의 경남 하동이 차(茶) 축제로 야단법석이다. ‘2023 하동 세계 차 엑스포’가 한 달간(5월 4일∼6월 3일) 열리는 가운데 박경리 소설 ‘토지’의 무대인 최참판댁 일대에서는 ‘천년의 차, 천년의 문학’을 주제로 토지문학제가 개최된다. 차 문화와 인연 깊은 칠불사에서는 성불(成佛)한 가야 7왕자를 비롯해 김수로왕과 허왕후 가족을 묘사한 ‘칠불괘불탱화’ 점안식도 공개된다.》
섬진강변 화개장터로 유명한 하동군의 지리산 자락은 지금 온통 초록빛깔로 덮여 있다. 화개동천의 깊은 골짜기, 경사진 산등성이를 따라 펼쳐지는 야생차밭 때문이다. 뭉텅뭉텅 구름 모양으로 자란 야생 차나무는 목가적이면서도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삼국사기’가 전했던 하동군 화개면 지리산 자락의 차 문화는 이후 대물림으로 이어졌다. 대일항쟁기에 차 개량종이 전국으로 퍼져 나갈 때도 ‘하동 차쟁이’들은 토종 야생차만 고집해 왔다. 그렇게 잘 보존돼온 야생차는 2017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로부터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4월 말 하동을 찾았을 때, 오랜 차 역사를 가진 고장답게 곳곳에서 진한 다향(茶香)을 느낄 수 있었다. 1년에 단 한 차례 치른 ‘차대전(茶大戰)’의 여운이기도 했다. 개인 야생차밭을 운영하고 있는 하동의 차쟁이들은 매년 곡우(4월 20일) 이전에 따는 우전차를 시작으로 세작(細雀·어린 찻잎으로 만든 차) 품평을 하며 한 해 차 농사를 승부짓는다. 품평회 참여자는 지리산 곳곳 전통 사찰의 스님들을 비롯해 전국에서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다인(茶人)들이다. 물론 공식적인 행사는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감지한 차의 향과 맛은 입소문을 타고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가기 때문에 차 판매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덖음 도사’로 유명한 다우제다의 이승관 대표.
“올해 우전차에서 야생차 본연의 참맛을 찾았다. 밤나무 냄새 비슷한 율향(栗香), 떡에서 나는 콩고물향, 어린아이의 배냇향 정도만 나와도 상급 차로 치는데 올해 차에서는 그 윗단계인 청향(淸香)과 난향(蘭香)까지 나왔다.”
● 차 문화와 가야 불교의 산실
지금 하동에서는 지리산 차쟁이들이 우려낸 차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2023 하동 세계 차 엑스포’가 그것이다. 코로나19로 연기됐다가 올해 열린 국내 최대 규모의 이 엑스포는 하동스포츠파크와 하동야생차박물관, 하동 야생차마을을 중심으로 열리고 있다. 하동 차 농사꾼들의 솜씨가 담긴 여러 종류의 야생차 제품은 물론이고 차 관련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담은 콘텐츠, 차 문화의 기원과 전승 과정, 차 관련 도구와 공예품 등을 한곳에서 만날 수 있다.한편으로 ‘자연의 향기, 건강한 미래, 차’라는 모토에 맞추어 세계 5개국 명차를 마셔 보는 ‘찻잔 들고 세계여행’, 야생차밭에서 차와 함께 캠핑을 즐길 수 있는 ‘티 캠핑’, 다원과 야생차밭을 거니는 ‘천년다향 힐링길’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준비돼 있다.
칠불사의 칠불괘불탱화에는 성불한 가야 7왕자와 김수로왕 부부 등이 묘사돼 있다.
마침 칠불사에서는 7일 오후 1시 ‘칠불괘불탱화’ 점안식이 열릴 예정이다. ‘일곱 부처님 나투시다’라는 이름의 칠불괘불탱화 점안식은 지리산 7불(가야 7왕자)이 역사상 처음으로 모셔지는 행사다. 3년여에 걸쳐 완성된 탱화에는 가야의 건국 스토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지리산 칠불’이 중앙에 묘사돼 있고, 작품 상단 오른쪽에는 가야 건국주인 김수로왕과 허왕후, 장유선사(허왕후의 오빠)가, 왼쪽에는 가야 제2대 왕인 거등태자 및 허씨 성을 이어받은 2명의 왕자가 묘사돼 있다. 그러니까 수로왕과 허왕후 사이에 난 가족 그림인 셈이다.
칠불괘불탱화 조성 주역인 칠불사 주지 도응 스님은 “지리산에서 득도한 7부처를 기려 지어진 칠불사에서 처음으로 일곱 부처를 모시게 돼 마침내 절 이름값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스님은 또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해 점안식을 미루다가 마침 하동 차 엑스포가 열리는 때에 점안식을 하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 지리산의 모녀 반달곰
소설 ‘토지’의 무대인 최참판댁. 바로 인근에 박경리문학관도 있다.
지리산 자락 의신마을 베어빌리지의 반달곰. 마을 주민들이 모녀 반달곰을 돌보고 있다.
글·사진=안영배 기자·철학박사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