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이난영 전 국립경주박물관장. 통천문화사 제공
최초의 여성 학예연구사, 최초의 여성 학예연구관, 최초의 여성 국립경주박물관장. 1957년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국립박물관에서 일하며 늘 ‘최초’의 기록을 썼던 이난영 전 국립경주박물관장(89)은 6일 전화인터뷰 내내 ‘마지막’이라는 말을 자주 꺼냈다.
이 전 관장은 최근 펴낸 신간 ‘박물관에서 속닥속닥’(진인진)에 대해 “내 생의 마지막이자 은퇴 이후 30년을 정리한 책”이라고 했다. 2012년 출간한 ‘한국 고대의 금속공예’(서울대학교출판부) 이후 11년 만에 펴낸 이 책에는 그가 1986년부터 1993년까지 관장을 지낸 국립경주박물관 속 유물에 얽힌 추억들이 빼곡히 담겼다.
젊은 시절 이난영 전 국립경주박물관장. 통천문화사 제공
이 전 관장이 “성덕대왕신종보다도 더 사랑한다”고 고백한 신라의 유물은 토우(土偶·흙으로 만든 사람이나 동물상)다. 토우는 한때 박물관을 떠나고 싶었던 그를 사로잡은 유물이다. 이 전 관장은 “발굴조사를 나가면 나 혼자 여자라 방을 차지한다고, 여자라서 힘을 쓰지 못한다고 늘 현장 작업에서 소외되곤 했다”며 “‘그냥 고등학교 선생님을 할 걸’ 후회하던 때 내 나름대로 박물관에서 살 길을 찾았다. 그 길이 바로 유물 창고 관리였고, 그때 창고에서 만난 게 신라의 토우였다”고 회고했다. 이 전 관장은 2000년 ‘신라의 토우’(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06년 ‘토우’(대원사) 등 자신의 토우 연구 성과를 담은 저서를 퇴직 후 출간하기도 했다.
“토우는 조그맣잖아요. 내가 다루기 쉬웠죠. 토우가 담긴 유물 상자 하나만 내게 주면 하루 종일 들여다보며 연구했어요.”
2009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를 나누는 이난영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의 모습. 동아일보 DB
2020년 초 무렵 이 책을 집필하면서 틈틈이 토우와 관련한 신간 초고를 집필해왔지만 아쉽게도 빛을 볼 수 없게 됐다. 이 전 관장이 지난해 7월 낙상으로 더 이상 거동을 할 수 없어 요양병원에 머물게 되면서다. 이 때문에 ‘박물관에서 속닥속닥’을 펴내는 데에도 3, 4년이 걸렸다. 이 전 관장은 “몸이 아파서 더는 못 쓰겠다 싶을 때마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속 직원들이 나를 찾아와 자료와 도판을 내밀며 계속 글을 쓸 수 있게 도왔다”며 “박물관을 떠난 지 30년 가까이 됐는데도 나를 관장이라고 불러주는 후배들의 말 덕분에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낸 것 같다”고 했다.
“다시 태어나도 박물관에서 일하고 싶다”는 이 전 관장은 끝으로 자신의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박물관에 가 달라”는 부탁을 남겼다. “내 책을 읽고 더 많은 이들이 박물관을 찾아준다면 그걸로 내 할 일은 다 한 것 같아요.”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