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영문 모른 채 엄마 장례식 간 아이…그날 이후 아이들 마음 챙깁니다”[죽고 싶은 당신에게]

입력 | 2023-05-08 13:32:00


한국에서는 매일 36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리고 매일 92명이 자살을 시도해 응급실에 실려 갑니다. 한국은 죽고 싶은 사람이 정말 많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 곳곳에는 죽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죽고 싶은 당신에게’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연재물입니다. 지친 당신이 어디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도 함께 담겠습니다. 죽고 싶은 당신도 외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2회> 특수교사 김송현 씨
4년 전, 특수교사 김송현 씨(32)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김 씨가 가르치던 발달장애인 초등학생의 아버지였다. 그가 전한 소식은 아이의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비보였다. 경황이 없는 아버지를 대신해 김 씨가 부랴부랴 아이를 장례식장으로 데려가던 길,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는 그저 해맑기만 했다.

장례식장에 도착해서도 아이는 더 이상 엄마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김 씨는 그런 아이를 보면서 ‘엄마가 없는 아이의 삶이 어떨지’ ‘앞으로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그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무겁다.

이때부터 김 씨의 고민은 깊어졌다.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떠날 만큼 힘든 사람의 마음은 어떤 걸까.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김 씨를 자살 예방 강의를 하는 교사가 되도록 이끌었다. 4일 현재 울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특수교사로 근무하는 김 씨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특수교사 김송현 씨가 학생이 탄 휠체어를 밀고 있다. 김 씨는 학생들이 어디서든 행복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김송현 씨 제공.


김 씨가 자살 예방 강의를 시작하게 된 건 2021년 교사를 대상으로 한 ‘생명지킴이 강사’ 연수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이 연수를 통해서 교사가 자살 고위험군 학생을 만났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떤 절차와 방법을 통해서 학생들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지 배웠다.

이를 바탕으로 김 씨는 3년째 울산 지역 교사들을 상대로 자살 예방 강의를 하고 있다. 학생 자살과 자해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학교가 교육청에 강의를 신청하면 김 씨와 같은 생명지킴이 강사인 교사들이 강의를 나간다. 지난해 김 씨는 10개 학교에서 강의했다. 청소년 자살 및 자해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아이들이 보내는 SOS 신호를 학교에서 알아채 위기 상황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방법들을 안내했다.

김 씨가 둘러본 학교 현장에서는 너무 많은 학생이 마음의 상처를 호소하고 있었다. 선생님에게 ‘지금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한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낸 학생을 찾아아 선생님들이 밤새 아이를 찾으러 뛰어다니는 일도 봤다.

실제로 청소년기본법상 청소년 연령에 해당하는 9~24세 사망 원인 1위는 2011년 이후 10년째 자살이다. 2020년 9~24세 사망자는 총 1909명이었는데 이중 자살이 957명(50.1%)으로 가장 많았다. 최근에도 10대 학생들의 자살 소식이 잇따라 알려졌다. 특히 그 순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생중계하는 일까지 생겨나면서 학부모들의 걱정도 커지고 있다.

김 씨는 친구와 이성 관계, 학업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어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본다. 지금 겪고 있는 문제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는 아이들의 마음도 그 누구보다 이해한다. 그래서 김 씨는 가족들의 세심한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이들과 식사를 꼭 같이 하셨으면 좋겠어요. ‘밥 먹는 동안에는 우리 잠깐만 핸드폰도 보지 말고 다 먹었다고 먼저 일어나지 말자’고 약속을 해보면 어떨까요. 아이들에게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요즘 친구들이랑은 잘 지내는지 물어봐 주세요.”

그러면서 그는 덧붙였다. “처음에는 서로 어색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열흘, 한 달이 지나면 아이들이 부모님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게 자연스러워질 거예요. 아이 학원과 부모님 직장 때문에 시간을 내기 어렵다면 간식을 먹는 시간이나 주말 저녁을 이용해서라도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꼭 들어주세요.”

김송현 씨가 배드민턴 활동을 하던 중 학생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김 씨 제공.


김 씨는 학교 현장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삶의 의지를 잃어가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노력한다. 최근에는 김 씨가 생명지킴이 강사로 활동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인이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다. 가정폭력을 당하고 있었던 지인은 자기 가족에게도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한 채 홀로 고통을 삼키고 있었다. 술에 기대 하루하루를 보내던 지인은 우울증 증상도 뚜렷했다.

김 씨가 강사 연수에서 배운 대로 지인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준 뒤 마지막에 ‘자살을 생각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지인은 울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김 씨는 가정폭력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상담사의 연락처를 건넸다. 그리고 ‘다시 나와 이야기하고 싶어지면 언제든 연락해라. 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지인은 상담과 약물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저는 ‘누구나’ 주변에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는 쉽사리 그 ‘누구’가 되려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나로 인해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하면, 그 경험 자체가 나에게도 살아갈 힘이 된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계속 제 학생들과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해요.”


자살 예방 Q&A
내 가족, 친구, 이웃이 ‘죽고 싶어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의 자문을 받아 자살 예방과 관련된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드립니다.

Q.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하는 행동이 있을까요? 어떤 행동을 할 때 위험하다고 보면 되는지 궁금합니다.
A. 네, ‘자살 위험 신호’가 있습니다. 자신에게 중요한 물건을 남에게 주는 등 주변 정리를 하는 행동이 대표적입니다. 식사나 수면 패턴에 큰 변화가 생기고 자꾸만 혼자 있으려 하면서 대화를 피하는 행동, 기존에 관심을 가지던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모습도 위험 신호에 해당하니 각별히 관심을 가져주세요.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 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애플리케이션(앱) ‘다 들어줄 개’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