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종로 무료급식소 긴 행렬
어버이날인 8일 서울 종로구 원각사 무료 급식소 앞에 줄을 선 어르신들에게 관계자들이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어버이날이라면서 밥 차려달라고 자식 고생시킬 바에는 여기 오는 게 미안한 마음도 안 들고 차라리 속 편하네요.”
8일 낮 12시경. 서울 동대문구 무료 급식소 ‘밥퍼나눔운동’(밥퍼)을 찾은 임이량 씨(89·여)는 “평소에도 종종 급식소를 찾는데, 오늘은 같이 사는 아들 가족에게 부담 주기 싫어서 나왔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급식소에는 어르신 약 400명이 모여 있었다. 한 초등학생이 어버이날을 축하하기 위해 바이올린으로 ‘어머님 은혜’를 연주하자 일부는 눈물을 훔쳤다.
● 평소 2배 넘게 몰린 무료 급식소
이날 밥퍼에선 어버이날을 맞아 점심 배식 1시간 전인 오전 10시 반부터 공연을 선보였는데, 공연 시작 전부터 어르신들이 150m가량 줄지어 입장을 기다렸다. 줄 서 있던 박종문 씨(81)는 “장가 간 아들, 독립한 딸은 사실상 남처럼 느껴진다. 행사에서 아이들이 노래를 불러주는 데 눈물이 나더라”며 눈시울을 훔쳤다. 일부 어르신들은 어버이날 특식과 공연을 위해 새벽부터 와 또래들과 이야기꽃을 피웠다. 경기 부천시에서 왔다는 윤귀남 씨(80)는 “혼자 사는데 새벽 4시에 일어나 첫차를 타고 왔다. 어버이날처럼 잔치가 있는 날은 일찍 와야 한다”고 했다. 이군자 씨(93·여)도 “자리를 미리 맡으려 새벽 5시 반에 왔다”며 “자녀가 없는데 여기서라도 어버이날을 챙겨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말했다.
밥퍼는 이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4년 만에 어버이날 공연을 재개했다. 최일도 밥퍼 이사장은 “자녀들이 어버이날 이런 곳을 찾아가는 걸 부끄러워할까봐 이른 아침에 오시는 어르신들이 많다. 이분들을 위해 급식 전 공연을 준비했는데 마음에 위로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밥퍼 측은 이날 어버이날 특식을 준비하면서 평소 300인분의 2배 이상인 700인분을 준비했는데 오전 11시 반∼오후 1시 반 동안 모두 소진됐다. 밥퍼 관계자는 “넉넉하게 준비했는데 방문한 어르신들이 1000명 가까이 돼 막판에 부족할 뻔했다”고 말했다.
● 급식소 카네이션에 웃음도
종로구 탑골공원 일대 무료급식소도 어르신들로 북적였다.
원각사 무료급식소 앞에는 정오부터 시작하는 배식을 앞두고 오전 11시 반경 이미 200명 넘는 어르신들이 줄을 서 있었다. 원각사 측이 배식 번호표를 나눠주며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자 어르신들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곳을 찾은 박상열 씨(88)는 “아흔이 다 된 늙은이가 자식들에게 챙겨 달라고 하기도 미안해 급식소를 찾았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의 홀몸노인 수는 지난해 187만5270명으로 5년 전 대비 40%가량 증가했다. 원각사 관계자는 “최근 물가가 오르고 홀몸노인이 늘면서 어버이날에 무료급식소를 찾는 어르신들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