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조작 사태로 번진 SG증권발 폭락 인맥 바탕 거물들 자금 유치… 메이도프, 650억 달러 ‘폰지’ 라덕연도 연예인-재계 친분 과시, 골프연습장 등 중심 은밀히 영업 조금씩 서서히 주가 띄워 수익률 높아지면 정산 뒤 재투자 감독 시스템 허점 여실히 드러나… 시장 감시와 처벌 강화 필요
《“우리는 (버나드) 메이도프를 신으로 여겼고 그의 손에 모든 것을 맡겼다.”(엘리 위젤 노벨평화상 수상 작가이자 홀로코스트 생존자)
“내가 번 모든 돈은 쟤(라덕연 대표)한테 다 준다. 종교는 이렇게 탄생하는 것.”(가수 임창정 씨)
2009년 미국 역사상 최악의 금융사범으로 알려진 버나드 메이도프가 저지른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사기)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그는 22세에 본인의 이름을 딴 투자회사를 차리고 1970년대 초부터 2008년까지 136개국의 약 3만7000명을 상대로 650억 달러(약 82조 원) 규모의 사기극을 벌였다.
메이도프와 라 대표의 투자자들은 한때 이들을 ‘신’처럼 떠받들며 거액의 돈을 맡겼다. 이들은 어떻게 오랜 기간 금융 당국의 감시를 피해 세력을 키울 수 있었을까.》
● 화려한 인맥 앞세워 ‘장기 작전’
1938년 미 뉴욕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메이도프는 1990년부터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을 세 차례 지낸 ‘월가의 거물’이었다. 최고급 골프클럽에서 자산가들과 골프를 즐기며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각종 자선 활동을 통해 본인의 평판을 관리했다. 인도주의재단을 운영하던 노벨상 수상자 위젤을 비롯해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감독, 애니메이션 제작사 드림웍스의 제프리 캐천버그 대표, 영화배우 존 말코비치 등의 거물이 그의 먹잇감이 됐다.
이번 SG증권발(發) 주가 폭락 사태에서도 라 대표는 연예인, 재계 회장 등과의 친분을 내세워 투자자를 유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가수 임 씨와 박혜경 씨, 이중명 전 아난티그룹 회장 등이 주요 투자자였던 것으로 알려지며 구설수에 올랐다.
두 사건 모두 장기간에 걸쳐 ‘밑그림’을 그리고 판을 키워 나갔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메이도프는 투자자들에게 시장 변동성과 상관없이 연 10∼20%의 수익률을 보장했는데, 실제 그가 주식이나 금융상품에 투자한 금액은 ‘0원’이었다. 메이도프는 투자자들의 돈은 자금세탁을 거쳐 자신의 계좌에 넣어둔 채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지급하는 ‘돌려막기’ 방식으로 투자 규모를 키웠다. 장기간 더 많은 투자자를 모을수록 수익금으로 나눠줄 여윳돈과 본인 주머니는 두둑해졌다.
● 금융당국의 감독 능력 도마 위에…CFD 관리 소홀로 사태 자초 지적도
두 사건 모두 금융당국의 감시망을 완전히 피해 가며, 감독당국의 ‘무능’을 드러냈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월가를 뒤집은 메이도프 사기의 경우에도 발각되기 전부터 수익률을 두고 꾸준히 의문이 제기돼 왔다. 하지만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수차례 메이도프에 대한 조사에 나섰음에도 문제점을 잡아내지 못했다. 수년간 주가조작이 벌어지는 동안 우리 금융당국도 전혀 해당 종목들의 이상 거래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초 “작전 세력이 몇 개 종목의 주가를 비정상적으로 띄우고 있다”는 제보를 받은 뒤에야 뒤늦게 서울남부지검, 금융감독원 등과 공조하며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거래 징후를 포착해야 하는 한국거래소도 감시 소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주가가 특별한 이유 없이 급변할 때 거래소는 해당 회사에 시장에 공개되지 않은 변동 요인이 있는지 묻고 공시를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거래소는 지난 3년간 주가조작 종목들에 시황 변동 관련 조회 공시를 요구하지 않았다.
● “시장 감시 시스템 개편, 투자자 보호 강화 필요”
금융당국은 부랴부랴 CFD 관련 규제를 강화하는 한편 주식 내부자 거래에 대한 사전 공시 제도 등 각종 예방책을 도입하고 나섰다. 전문가들은 더 교묘해진 제2의 SG 사태 등 신종 금융사기가 또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만큼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의 대응보다 근본적인 감시 및 처벌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작전 세력이 장기간 서서히 주가를 조작하는 것은 기존 시장 감시 시스템의 사각지대였을 것”이라며 “시장 감시 시스템이 너무 자주 작동되는 것도 문제지만, 새로운 유형의 주가조작에 대해서도 사전 경고음이 울리도록 감시 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주가조작범은 날아다니는데 금융당국은 뛰어다니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금융 범죄는 고도화되는데 금융위 내 디지털 포렌식 전문 인력이 한 명도 없는 만큼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라도 관련 인력을 더 투입하고 첨단 감시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시장 교란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주가조작 등 증권 범죄에 가담한 경우 최대 10년간 계좌 개설, 주식 거래를 제한하고 금융·상장회사 임원에 취직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차액결제거래(CFD·Contract For Difference)투자자가 증권사에서 산정한 증거금을 낸 뒤, 주가 변동에 따른 차액만 결제하는 장외 파생상품 거래.
1억원의 증거금으로 2억5000만 원의 주식을 매매하는 식으로, 증거금의 2.5배를 투자할 수 있음.
레버리지 투자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신용융자와 유사.
신아형 기자 abro@donga.com
강우석 기자 ws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