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전공 교수
한편 ‘쓰레기’를 반기는 사람들도 있으니 고고학자가 그들이다. 물론 그들이 선호하는 쓰레기는 전근대 시기의 것에 한정된다. 옛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버린 쓰레기 더미에서는 그들이 버린 음식물 찌꺼기, 망가진 가재도구를 비롯하여 심지어 배설물까지 확인되므로 지금은 사라져 버린 옛사람들의 삶을 생생히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동삼동 패총에 밀봉된 신석기 문화
1971년 부산 영도구 동삼동 바닷가 패총에서 출토된 신석기 시대 조가비탈. 길이 10.7cm의 작은 크기로, 장난감 또는 무엇인가를 상징하기 위해 만든 물건으로 추정된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1969년 3월 국립박물관 발굴팀은 당시 정부가 추진하던 ‘문화유산 종합 조사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우리나라 신석기 문화를 해명하기 위해 동삼동 패총 발굴에 착수했다. 1929년 동래고등보통학교 교사가 이 패총을 발견한 이래 1964년까지 외국인들이 몇 번에 걸쳐 소규모 조사를 진행한 바 있었기에 정밀 조사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발굴에 임했다.
밭으로 경작되던 흙을 제거하자 패각층이 나왔고 그 아래에는 검은색 흙이 퇴적되어 있었다. 발굴을 시작한 지 1주일 만에 토기 조각과 함께 조가비 팔찌가 출토됐다. 이날부터 다량의 토기, 동물 뼈, 석기 등이 쏟아졌다. 이듬해 진행된 2차 조사에서 일본 규슈에서 반입된 조몬(繩文) 토기가 확인된 데 이어 3차 조사가 한창이던 1971년 4월에는 또 다른 중요 유물이 발견됐다. 길이 10.7cm의 가리비에 작은 구멍 2개와 큰 구멍 1개를 뚫어 만든 탈이 그것이다. 우리나라 신석기 문화를 대표하는 예술품 출현에 모두 환호했다.
1999년에 이르러 부산박물관 조사팀이 추가 조사를 벌여 집터와 옹관묘, 불탄 조와 기장 등을 찾아냈으며,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유적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 이 유적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기원전 6000년 무렵이고 이후 약 4000년 동안 간헐적으로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그 옛날 동삼동 바닷가에 살던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 더미에는 그들의 일상이 차곡차곡 쌓여 갔으며, 발굴을 통해 오랜 세월 밀봉되어 있던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공개된 것이다. 동삼동 패총은 그 시대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거나 동물을 사냥했고 조나 기장 등 잡곡 농사를 지었음을, 그리고 조가비로 장신구와 예술품을 만들고 멀리 규슈에 살던 사람들과도 교류했음을 수천 년의 세월을 넘어 우리에게 생생히 알려주었다.
완벽 보존된 2000년 전 벼 껍질
기원을 전후한 시기가 되면 한반도 중남부에서도 철기 사용이 본격화한다. 철기 사용은 사람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1992년 광주의 한 유적에서는 그 시기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수많은 유물이 출토됐다.그해 6월, 국립광주박물관 조사팀은 광주 신창동에서 발굴을 시작했다. 도로 공사로 인해 유적이 훼손되기 일보 직전 가까스로 공사를 중지시키고 발굴에 착수할 수 있었다. 조사원들은 몇 지점을 선정해 유적의 분포 범위부터 파악하기로 했다. 구릉 사이에 자리한 골짜기의 경우 일부분을 바둑판처럼 구획한 다음 한 곳 한 곳 조심스레 파 들어갔다. 교란된 겉흙을 먼저 제거하고 1m가량 파 들어가니 밝은 색조의 단단한 흙이 나타났다. 그곳에서 멈출까 잠시 고민했지만 조금 더 파보기로 했다. 단단한 층을 걷어내자 암반층이 나오리란 예상과 달리 펄이 있었다.
펄을 조금씩 걷어내자 빗, 칼자루, 괭이, 싸리비가 드러났고 불탄 쌀과 벼 껍질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대부분의 유물은 마치 방금 공방에서 만든 것처럼 보존 상태가 완벽했다. 조사원들은 귀중한 유적을 찾았음에 환호했지만 막대한 양의 목제품을 제대로 수습해 보존 처리할 여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아 발굴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신창동 유적에서 나온 부채의 나무 자루(길이 16.4cm). 유력한 인물들이 위세를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던 물건으로, 몸체에 새털을 끼워 사용했다. 국립광주박물관 제공
1992년 광주 광산구 신창동에서 출토된 초기 철기시대 현악기(길이 77.2cm). 연못 속 촉촉한 펄에 밀봉된 덕분에 보존 상태가 완벽하다. 국립광주박물관 제공
칼슘과 펄이 ‘타임캡슐’ 역할
19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전국 곳곳에서 패총, 연못이 발굴되었고 그곳에서 옛사람들이 버렸던 ‘쓰레기’가 원상을 간직한 채 출토되었다. 패총의 경우 패각의 칼슘 성분이, 연못의 경우 촉촉한 펄이 유기물이 원상을 보존하도록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옛사람들이 별다른 생각 없이 버린 쓰레기가 수천 년의 세월이 지난 후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생생히 증언하는 증거가 된 것이다. 발굴된 유물들이 패총이나 연못에서보다 더 완벽한 조건 속에서 보존될 수 있기를, 유물에 대한 정밀한 분석과 연구가 이루어져 옛사람들의 삶이 제대로 해명되길 바란다.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전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