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더쿠’는 한 가지 분야에 몰입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덕후’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자신이 가장 깊게 빠진 영역에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내고, 커뮤니티를 형성해 자신과 비슷한 덕후들을 모으고, 돈 이상의 가치를 찾아 헤매는 이들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한국의 ‘닉 우스터’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중년 남성 메이크오버를 진행하던 스타트업 더뉴그레이(옛 헬로우젠틀)의 권정현 대표는 창업 4년만인 지난 2018년 억대의 빚을 지게 됐다. 매달 갚아야 할 이자만 200만 원이 넘어가고 신용등급이 10등급까지 추락해 까딱하면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는 상황. 회사도 폐업했다. 말 그대로 제대로 망한 것이다.
그런 그가 6개월 만에 다시 사업에 도전했다. 그것도 이미 실패한 아이템인 ‘시니어 메이크오버’를 아이템으로. 모두가 말도 안 된다며 말렸지만 권 대표는 2014년 처음 창업했던 때와 똑같이 동네 카페 사장님, 친구의 이모부, 심지어 시아버지까지 주변 아저씨를 모으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이들에게서 우중충한 점퍼와 낡은 구두를 벗기고 트렌치코트와 각이 맞는 셔츠로 갈아입혔다.
시니어 인플루언서 '아저씨즈'_출처 : 더뉴그레이
결과는 이전과 완전히 달랐다. 더뉴그레이는 뉴발란스, BMW 등 20여 개 글로벌 기업에 러브콜을 받는 ‘핫’한 패션 콘텐츠 회사로 발돋움했다. 자체적으로 기획한 시니어 인플루언서 ‘아저씨즈’는 글로벌 영상 플랫폼 ‘틱톡’에서 누적 조회 수 1억 뷰를 넘기며 셀럽으로 거듭났다. 아담 모세리 인스타그램 CEO가 더뉴그레이 SNS 계정을 직접 팔로우 할 정도로 해외에서도 인지도가 높아졌다. 지난해 11월에는 일본 법인을 세우며 해외 진출도 추진 중이다.
같은 사람이 시작한 같은 사업 아이템인데 왜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맞을까? 그 이유를 들여다봤다.
“너는 옷이라도 잘 입어야 해!”
친누나의 일갈에 권 대표는 고등학생 때부터 옷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자신의 단점을 옷으로 보완하는 데 도가 텄다. 그렇다고 패션을 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다. 여느 수험생처럼 취업이 잘 된다는 말에 이과를 선택해 원자력공학과에 진학했다. 공부를 잘 했기에 의대를 가볼까 싶어서 사반수(사수+반수)를 하기도 했지만 의사가 된다고 행복할 것 같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 원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옷’이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간 그는 여성 잡화 브랜드 서포터즈 활동을 시작으로 패션 관련 경험을 쌓아갔다. 운 좋게 전공 수업에 제출한 신사업 기획안이 교수 눈에 띄어 빅테크 대기업에서 인턴으로 일하기도 했지만 오래 버티지 못했다. 회사의 이름에만 기댄 채 무기력하게 나이 들기는 죽기보다 싫었기 때문. 차라리 처음부터 평생 할 수 있는 ‘내 일’을 하자고 결심했다.
미국의 패션 디렉터 닉 우스터_출처 : 닉 우스터 인스타그램
창업을 고민하던 때에 과거 인터넷에서 본 ‘닉 우스터’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옷 잘 입는 남자’로 불리는 미국의 패션 디렉터다. 올해 64살에다가 키는 168cm인데도 불구하고 세련된 스타일링으로 젊은 모델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가진다.
한국의 닉 우스터 만들기
권 대표는 2014년 이른바 ‘꽃할배 패셔니스타 만들기’ 프로젝트로 창업 아이디어 공모전에 입상해 100만 원을 타내며 초기 투자금을 마련한다. 하지만 문제는 모델을 구하는데 있었다. 아무도 선뜻 권 대표의 모델 제의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무턱대고 지하철 경로우대석부터 길거리 ‘찐’ 아저씨들을 찾아 나섰지만 퇴짜맞기가 부지기수. 명함도 없어서 메모지에 번호를 적어 드리면 자식들이 전화를 해서 “당신 사기꾼이냐”며 몰아붙이는 일도 잦았다. 다행히 한 카페에 우연히 들어갔다 발견한 백발 장발의 바리스타가 첫 모델이 돼 줬다. 그에게 닉 우스터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렇게’ 만들어 주겠다고 설명하던 권 대표의 간절함을 중년의 바리스타가 알아본 것. 그 후에는 일이 착착 진행됐다. 권 대표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타일링은 물론 촬영도 직접 해나갔다. 비록 카페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 입고 카메라도 없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을 정도로 환경은 열악했지만 말이다.
헬로우젠틀의 첫 룩북. 왼쪽부터 권정현 더뉴그레이 대표와 헬로우젠틀의 첫 번째 모델_출처 : 더뉴그레이
2014년 7월 페이스북 ‘헬로우젠틀’ 페이지에 백발 할아버지의 첫 룩북이 올라왔다. 세련된 ‘노신사’가 아니라 보통의 청년들처럼 차려 입은 모습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순식간에 구독자 1만 명을 모으며 신개념 ‘페북스타’로 떠올랐다.
첫 번째 실패, 이대로 정말 ‘끝’?
하지만 콘텐츠만으로는 돈을 벌 수 없는 노릇. 권 대표는 ‘꽃할배’를 앞세워 남성 의류 쇼핑몰을 야심차게 열었다. 그러나 쇼핑몰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게 패착이었다. 권 대표의 쇼핑몰은 모델이 중년 남성이라는 점 외에는 다른 남성 의류 쇼핑몰과 크게 차별화되지 않았다. 당연히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사업 실패 후 권 대표는 어려운 시간을 보낸다. 매일 빚 독촉에 시달려야 했고 빚을 갚기 위해 수학 과외를 하면서 돈을 버는 족족 빚을 갚아야 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공부도 잘하던 애가 남들처럼 살지 사업한다고 했다가 망했네”라고 자신을 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당장 입에 풀칠을 해야했기에 권 대표는 결국 ‘남들처럼’ 회사로 돌아갔다. 그런데 2개월 만에 또 뛰쳐나왔다. 아무리 돈이 궁해도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시니어 메이크오버라는 아이템 자체는 잘못이 없다고 확신했다.
비록 수익화에는 실패했지만 뜨거운 관심을 받은 만큼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10년 뒤에는 50대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사업은 각광받을 것으로 판단했다. 특히 패션에 신경 쓸 겨를 없이 바삐 살았던 아버지 세대와 달리 MZ 세대는 나이가 들어도 ‘멋’을 놓지 않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결국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6개월만에 재창업에 도전하게 된다.
등산복만 벗어도 9할은 완성
두 번째는 달라야 했다. 권 대표는 ‘선택과 집중’을 가슴에 새겼다. 커머스와 오프라인 사업에 대한 욕심은 내려놓고 시장 반응이 좋았던 메이크오버 콘텐츠만 파고 들기로 한 것. ‘옷이 날개’라는 것을 보여주면 분명 패션 브랜드 한 곳에서는 광고 협업 제안이 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기 위해선 모델 한 명의 룩북만 올렸던 이전과 달리 최대한 많은 아저씨들을 ‘힙’하게 탈바꿈해야 했다. 딱 100명의 사례만 죽기 살기로 쌓아 보자며 이를 악물었다.
친인척은 물론이고 친구의 가족, 사돈까지 수소문해 아저씨들을 모았다. 옷값만 받고 스타일링부터 사진 촬영까지 권 대표 혼자 모두 도맡았다. 키와 체형이 제각각이라 스타일링이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잠시, 펑퍼짐한 잠바를 벗기고 니트와 슬랙스를 입히는 것만으로도 90%는 성공이었다. “젊은 애들이 입는 거 아니냐”, “남사스럽다”며 투덜대던 이들도 화보처럼 찍힌 사진을 보면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옷을 바꿔 입었을 뿐인데 다시 20대가 된 기분이라며 고마워하는 사람도 많았다.
“가장으로 살아오면서 스스로를 돌볼 시간이 없었던 거예요. 일부러 대충 입고 다니고 패션에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 아니었죠. 멋있는 자기 모습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펀딩 플랫폼 와디즈를 통해 진행한 메이크오버 프로젝트 결과물_출처 : 더뉴그레이
하지만 이번에도 모델 찾기가 어려웠다. 20명이쯤 메이크오버를 진행하자 주변에서 소개를 받아서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2018년 9월 ‘우리 아빠 프사 바꾸기’라는 이름으로 소셜 펀딩을 연다. 이때 사명도 ‘더뉴그레이(THE NEW GREY)’로 변경했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중년(Grey)을 보여주겠다는 포부였다. 펀딩 오픈 10분 만에 모집 인원 30명이 모두 마감됐다. 이미 SNS를 통해 눈여겨보고 있던 전국의 아들딸들이 들썩였기 때문.
프로젝트가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자 100개의 메이크오버를 채우기 전에 기업들로부터 러브콜이 쇄도했다. 의외인 점은 LF닥스와 같은 패션 브랜드뿐만 아니라 현대자동차, 캐논 등 업종을 막론한 브랜드들이 협업 요청을 해온 것. 예컨대 새마을금고와는 전국의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메이크오버 캠페인을 진행한 식이다.
국가보훈처와 진행한 '한국전쟁 참전용사' 메이크오버_출처 : 더뉴그레이
권 대표는 현재까지 진행한 60여개의 협업 프로젝트 가운데 국가보훈처와 함께 한 ‘한국전쟁 참전용사’ 메이크오버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꼽았다. ‘조끼 입는 노인’이란 이미지에서 탈피해 ‘영웅’으로 되살리기 위해 세련된 수트를 선택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말쑥한 정장을 입고 찍은 사진에서 떠올린 아이디어다.
‘아저씨즈’와 함께 재도약
규모 있는 기업과 협업하며 매출도 조금씩 늘어가던 그때, 또 한번 위기가 찾아왔다. 권 대표는 ‘패알못’도 한 달에 한 번은 미용실에 간다는 점에 착안해 바버샵 체인점을 운영 중이었다. 더뉴그레이 프로젝트와 연계해 옷도 바꿔 입고 머리도 멋있게 해서 사진을 찍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다. 당시 바버샵은 권정현 대표와 동업자가 투자를 해서 열고 동업자가 운영을 했다. 그런데 믿었던 동업자가 회삿돈을 가로채 잠적하면서 갑작스레 바버샵 운영이 불가능해 졌다. 연달아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잡혀있던 광고 스케줄도 전부 날아갔다. 이미 경험했던 ‘실패’의 감각이 다시 오소소 살아났다.
다행히 두 번째는 달랐다. 과거에 겪은 실패의 두려움보다 한번 맛본 성공의 맛이 더 컸기 때문이다. 적자만 났던 이전과 달리 돈을 벌어봤다는 자신감도 등을 받쳐줬다. 재창업 때 결심한 ‘선택과 집중’을 다시 가슴에 새기며 바버샵 체인점은 정리하고 더뉴그레이 프로젝트에만 몰두하기로 했다.
악착같이 버티던 권 대표에게 한 아저씨가 찾아왔다. 그는 시니어 모델 오디션에서 매번 떨어지는데 아무래도 패션감각 때문인 것 같다며 스타일링 컨설팅을 의뢰했다.
“첫 창업 때, 시니어 모델을 기획했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매니지먼트 하는 게 부담스러워 두 번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콘텐츠도 만들 수 있는 ‘인플루언서’라면 다르지 않을까 싶었죠.”
마침 팬데믹으로 디지털 광고 시장이 커지면서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주목받는 시점이었다. 권 대표가 직접 스타일링, SNS 사용법, 영상 촬영 방법까지 세세히 가르친다면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는 시니어 모델 오디션장 등을 돌아다니며 중년 남성들을 캐스팅해 교육에 열을 올렸다. 그 과정이 지루하다며 떠난 이들을 제외하고 남은 8명의 소수 정예와 함께 시니어 패션 크루 ‘아저씨즈’가 출범했다.
시니어 인플루언서 '아저씨즈'는 인스타그램 릴스, 틱톡 등에 다채로운 숏폼 콘텐츠를 선보인다_출처 : 더뉴그레이
2020년 9월 틱톡에 올린 ‘할배 신발 챌린지(영상 첨부 예정)’를 시작으로 ‘지구방위대 챌린지’, 라비의 ‘범챌린지’ 등 다양한 숏폼 콘텐츠가 인기를 모았다. 2021년 9월 인스타그램에 올린 댄스 영상은 최고 조회 수 1750만을 돌파했다. 손주뻘 되는 아이들이 ‘형, 멋있어요’라며 댓글을 달고 옷 정보를 묻기도 한다. 2023년 3월 기준 인스타그램, 틱톡을 포함한 총 SNS 팔로워 수는 70만 여명이고 누적 조회 수는 1억을 훌쩍 넘겼다. 평균 나이 64.5세의 신개념 ‘아이돌’ 그룹이 태어난 것이다.
세상 모든 아저씨를 ‘패션피플’로
“옷이 아저씨, 아줌마에 대한 편견을 기대감으로 바꿔주는 것을 목도했어요.”권 대표는 처음에는 단지 한국의 닉 우스터를 만들고 싶다는 ‘힙’한 목적에서 출발했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딥’한 의미가 생겼다고 강조한다. 특히 패션을 매개로 세대 갈등을 풀어갈 실마리를 찾았다고 말한다. 권 대표에 따르면 아저씨즈에게 인생 상담을 요청하는 DM(다이렉트 메시지)을 보내는 2030 세대 청년들이 많다고 한다. 옷만 다르게 입었을 뿐인데 꽉 막힌 어른이 아니라 깨어있는 삶의 선배로 받아들여 먼저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잦다. ‘나도 그렇게 늙어가고 싶다’는 바람도 함께다.
출처 : 더뉴그레이
더뉴그레이는 지금까지 800명이 넘는 중년들의 패션을 바꿔 놓았다. 직접 바꾸지는 못해도 아저씨즈를 통해 힙한 시니어의 표본을 만들기도 했다. 지난해 6월부터는 시니어 인플루언서 아카데미 ‘더뉴그레이 클럽’을 운영 중이다. 수강생 중 한 명은 “옷을 젊게 입기 시작하자 즐기는 문화도 보다 젊어졌다”면서 “딸이 먼저 성수동 핫플레이스를 물어온다”며 뿌듯해 하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계속되며 해외에서도 관심이 높다. 지난해 11월 일본 법인을 세워 현지 진출에 나섰는데 권 대표는 “한국에서보다 빨리 자리 잡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토로한다. ‘이 나이에 무슨’, ‘늙어서 주책’과 같이 중년들이 스스로 냉소적으로 봐서다. 삼성 그룹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스타일링 강의에서 ‘옷을 살 권한이 없다’는 중년 남성들의 말에 웃펐던 기억도 있다. 권 대표는 당장 모든 옷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취향’을 알아가는 것만으로 의미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세월에 가려졌던 ‘나’를 찾아가는 출발점이라는 설명이다.
출처 : 더뉴그레이
한편 그는 올 3월 다시 쇼핑몰을 열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여타 패션 브랜드보다 기능적으로 특별하거나 가격적 경쟁력이 있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패션엔 나이가 없다’는 더뉴그레이만의 철학을 녹여 내서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다 입을 수 있는 옷을 내놓겠다는 의지이다. 첫 창업 때와 달리 콘텐츠 사업이 궤도에 올랐기에 자신감이 붙기도 했다. 더뉴그레이는 롤업 청바지에 컨버스화를 신은 아저씨를 언제든 거리에서 마주할 수 있는 날을 위해 오늘도 달린다.
“궁극적으로 ‘시니어’라는 구분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고 잘 어울리는 옷이 무엇인지 알고 자유롭게 입을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인터비즈 조지윤 기자 georg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