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 황룡사터 서회랑 서편지구에서 출토된 등잔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등잔이 한꺼번에 1700여 점이 출토된 건 처음”이라고 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가난한 인도 여인 난타는 온종일 구걸해 얻은 한 푼을 등불 하나 밝히는 데 썼다. 그의 등불 주변에는 왕과 귀족들이 밝힌 호화로운 등불이 가득했지만 거센 바람이 불었을 때 오직 난타의 등불만 살아 어둠을 밝혔다. 주위에서 난타의 등을 끄려 할수록 불은 더 밝게 타올랐다. 이를 바라보던 부처는 “가난하지만 큰 마음을 지닌 여인이 정성으로 켠 등불이기에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불경 ‘현우경(賢愚經)’ 속 이야기로 연등(燃燈) 의례의 기원으로 여겨진다. 한국에서 연등 의례는 불국토를 꿈꿨던 신라의 왕실사찰 황룡사에서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
경북 경주 황룡사터 서회랑 서편지구에서 출토된 등잔 8점. 해당 등잔들을 토기로 제작됐으며 지름은 약 10㎝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조선 말기 실학자 석정 이정직(1841~1910)이 전북 전주 진북사에서 열린 연등회 풍경을 그린 ‘진북사관등(鎭北寺觀燈)’. 그림에는 남녀노소가 진북사를 찾아 등을 밝히고 등불을 바라보는 모습이 담겼다. 불교중앙박물관 제공
문헌을 통해 이 등잔들이 황룡사에서 행해진 ‘연등회’나 ‘백고좌(百高座)’에 쓰였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신라 경문왕이 866년 정월 황룡사에 행차해 연등 행사를 구경하고 백관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고 기록돼 있다. 100개의 사자좌(獅子座, 부처를 모시는 자리)를 마련해 법사 100명이 100일 간 설법하는 백고좌 역시 613년 원광법사가 황룡사에서 설법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나온다. 이후에도 황룡사에서 10번의 백고좌회가 열렸다는 기록이 사료를 통해 전해진다.
임영애 동국대 문화재학과·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는 “백고좌 때 법사들이 가부좌한 자리를 밝히는 데 쓰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수량에 미뤄 백고좌보다는 대규모 연등회에 쓰였을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