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혁·산업1부
지난 2년간 자동차 산업을 취재하면서 주변으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전기차를 사야 할까요”였다. 여러 정보와 의견을 주고받은 뒤 전한 조언은 거의 이랬다.
“당장 차를 사야 한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3, 4년 정도 뒤라면 전기차가 맞다.”
자동차 업계에서 전기차를 언급하지 않고는 미래를 이야기할 수 없게 됐다. 2000년대 후반 휴대전화 업계에 불어닥쳤던 ‘아이폰 모멘트’(신기술이 일상에 녹아드는 순간)처럼, 세계 자동차 제조사들은 ‘EV(전기차) 모멘트’ 혹은 ‘테슬라 모멘트’라 부를 만한 변화를 맞닥뜨렸다. 소비자들이 이제 전기차를 당연한 선택지로 받아들이는 게 그 증거다.
자동차 업계는 이미 전쟁을 방불케 하는 생존 경쟁을 펼치고 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방패 삼아 자국 시장 수성에 나섰다. 독일 폭스바겐 등 유럽 업체는 프리미엄 전략을 통해 충성도 높은 소비자들을 붙잡고 있다. 중국 업체는 전기차 보조금 정책에 힘입어 내수 시장을 지킨 뒤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 1위 일본 도요타도 최근 수장을 교체하며 부랴부랴 전기차 전쟁에 끼어들었다.
한국 입장에서 다행인 건 전기차 후발 주자였던 현대자동차그룹이 선두권까지 치고 올라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기차 전쟁은 이제 막 개전(開戰)했다. 각국 정부와 기업의 공세는 점점 더 노골적으로 펼쳐질 것이다.
한국 정부는 전기차 공장 투자에 대한 세액 공제를 대기업 기준 1%에서 최대 15%(올해 한 25%)로 확대하며 지원 사격에 나섰다. 하지만 공제율 최대 30%인 미국에 비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런데 일부에선 대기업 특혜, 현대차그룹 맞춤형이라는 불만이 벌써부터 들려온다.
특정 회사에만 혜택이 과도하게 집중되지 않는지는 잘 살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경쟁국들에 비해 세제 및 정책 지원이 늦어져 국가 산업경쟁력 자체를 잃는다면, 이를 되돌릴 방법은 없다.
이건혁·산업1부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