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윤대 세브란스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 잦은 중년 방귀, 자연적 노화현상 입 벌리고 자면 방귀 많아질 수도 억지로 참으면 장 기능 약해져 방귀 아예 안 나오는 게 병일 수도 배변 후 변의 색깔-형태 확인해야 잔변감, 대장암 징후일 수도 1,2일 간헐적 단식 장 건강에 도움
한윤대 세브란스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방귀가 대체로는 질병이 아니지만 때로 대장 질환의 전조 증세가 될 수 있다며 세심히 관찰할 것을 주문했다. 이와 함께 배변 후에는 반드시 변의 색깔과 형태를 확인해야 대장암 등을 일찍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또 다른 50대 남성 B 씨도 방귀 때문에 생각이 많아졌다. 방귀를 뀌는 횟수가 늘어나지는 않았다. 그 대신 냄새가 더 독해졌다. 친구들의 타박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장에 큰 병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두 사람은 병에 걸린 것일까. 한윤대 세브란스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에게 물었다. 한 교수는 “방귀는 대체로 질병이 아닌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라면서도 “대장 질환의 전조 증세일 수는 있으니 동반 증세를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A 씨는 질병이 아니지만 B 씨는 질병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입을 자주 벌려도 방귀 많이 생겨
방귀가 생기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음식 소화 과정에서 장에서 만들어진 가스가 항문으로 배출되는 것이다. 소화 효소로 잘 분해되지 않는 음식일수록 장내 미생물의 발효 작용이 활발해져 더 많은 가스가 발생한다. 보통 ‘포드맵(FODMAP)’이라고 부르는 당류 식품이 여기에 해당한다. 포드맵은 발효당, 올리고당, 이당류, 단당류, 당알코올 등 식품의 영문 앞글자를 따서 만든 용어다. 방귀가 지나치게 잦다면 가스를 덜 발생시키는 저(低) 포드맵 식품을 먹는 것도 좋다. 바나나, 딸기, 오렌지, 토마토, 고구마, 감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우유와 치즈는 고(高) 포드맵 식품에 해당한다. 다만 유당을 제거한 우유나 고형 치즈는 저 포드맵 식품으로 분류한다. 일반적으로 탄산음료는 가스를 많이 담고 있지만 방귀를 유발하지는 않는다. 트림을 통해 입으로 다시 가스가 배출되기 때문이다.
둘째, 입으로 마신 공기가 대장을 거쳐 방귀로 배출된다. 코로 숨을 쉰다면 공기는 기도를 통해 폐로 가기 때문에 방귀를 유발하지 않는다. 따라서 평소에 △말을 많이 하거나 △많이 웃거나 △껌을 많이 씹거나 △허겁지겁 음식을 먹을수록 몸 안에 가스가 더 차고, 방귀도 자주 나올 확률이 높다. 수면무호흡증이 있거나 코골이가 심하거나 비염이 심하다면 잠을 잘 때 입으로 호흡을 하게 된다. 이 경우에도 가스를 더 많이 들이마시게 되므로 방귀를 자주 뀔 수 있다.
●방귀, 대장질환 전조 증세일수도
A 씨처럼 중년 이후에 방귀가 잦아졌다는 사람이 많다.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이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나이가 들면 음식을 이동시키는 대장의 연동 기능이 떨어진다. 장 안으로 들어온 음식이 한곳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만큼 미생물의 발효 작용도 활발해진다. 그 결과 가스가 더 많이 발생하고, 방귀를 자주 뀌게 되는 것이다. 방귀 소리가 크고 냄새가 난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육류 단백질, 콩이나 청국장 같은 음식을 먹으면 방귀 냄새가 심하다. 반면 회와 같은 수산물의 경우 방귀 냄새가 독하지 않다.
때로 방귀는 대장 질환에 걸렸다는 징후가 된다. 우선 냄새를 따져봐야 한다. 만약 고기를 많이 먹지도 않았고, 다른 음식 섭취량도 그리 많지 않은데 방귀에서 고약한 냄새가 자주 난다면 대장암이나 염증성 장 질환이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 내시경 검사 등을 통해 정확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방귀가 나오지 않는 것도 건강 이상 신호일 수 있다. 배 속에 가스가 차고 더부룩한데 방귀가 안 나오고, 배변 횟수도 주 1회 정도로 떨어졌으며, 배가 심하게 불러온다면 ‘구불결장 염전증’을 의심할 수 있다. 이 병은 장의 연동 기능이 극도로 떨어졌을 때 발생한다. 소화가 안 된 음식이 이동하지 못하고 S자 모양의 결장에 쌓이는 바람에 그 부위가 주머니처럼 축 늘어지는 것이다. 여성은 40대와 50대에서, 남성은 60대와 70대에서 발생하는 편이다.
●대변 상태 수시로 체크해야
대변은 장 건강의 가장 중요한 지표다. 한 교수는 “방귀와 마찬가지로 대변 또한 냄새와 횟수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2,3일에 한 번꼴로 배변하거나 냄새가 나도 질병과의 연관 관계가 낮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대신 △변의 색깔 △형태 △잔변감 등 세 가지를 반드시 살필 것을 주문했다. 검거나 빨간 혈변이 자주 나온다면 대장암을 의심할 수 있다. 혈변이라고 하면 빨간 변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출혈 부위가 항문의 깊은 안쪽이라면 혈변은 검은색을 띤다.
배변 후에도 찜찜한 느낌이 남아있는 잔변감도 대장암의 징후일 수 있다. 암 덩어리가 커지면 변을 배출할 통로가 일부 막힌다. 때로는 배변 활동 자체가 힘겨워질 수도 있다. 암 덩어리가 클수록 잔변감도 커진다.
한 교수는 용변을 본 후 대변 상태를 반드시 확인할 것을 주문했다. “병원에 가지 않고서도 장의 건강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튼튼한 장을 만들기 위한 생활 수칙1. 지방 함량을 줄이고, 육류를 먹되 지나치게 많이 먹지 않는다.
2. 식사는 천천히 한다. 과식이나 폭식은 피한다.
3. 매일 1.5~2L의 물을 충분히 먹는다.
4. 장 활동을 돕기 위해 유산균을 추가로 먹는다.
5. 반드시 운동한다. 단, 과도한 운동은 피한다.
7. 절주하고 금연한다.
8. 스트레스를 적절히 관리한다.
※자료 : 한윤대 세브란스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
● 속 안 좋을 때 간헐적 단식 시도해 볼만
새로운 업무를 맡거나 해외여행만 가면 변비 증세가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다. 의학적으로 보면, 대장과 뇌 신경이 연결돼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 교수는 “낯설거나 힘든 상황이 되면 뇌가 스트레스를 받고, 그 여파로 대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교수에 따르면 자폐 증세가 있을 때 대변을 잘 보지 못하는 사례도 있는데, 이 또한 같은 이유에서다. 시험, 업무 미팅 등 중요한 일이 임박하면 극심한 복통이 시작되는 사람들이 있다. 배를 움켜쥐다 급기야 화장실로 달려간다. 과민성장증후군인데, 스트레스 상황을 뇌가 인식했기 때문에 장에 영향을 미친 사례다.
만약 평소에 장을 편안하게 해 주면 어떨까. 한 교수는 “뇌가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되고, 그 결과 장도 편안해진다는 연구결과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최근 유산균을 비롯한 장내 미생물을 늘리는 건강식품이 많이 출시됐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사람에 따라 효과는 다를 수 있지만 대체로는 유산균 식품을 먹으면 장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속이 좋지 않을 때는 간헐적 단식을 하면 장 기능이 좋아질 수 있다. 한 교수는 “단식기간에는 먹은 음식이 없으니 장이 충분히 쉴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한 교수는 저녁 식사까지만 하고 다음 날까지 14시간 동안을 금식할 것을 권했다. 다만 간헐적 단식은 하루 혹은 이틀로만 끝낼 것을 당부했다. 한 교수는 “그 이후로도 속이 좋지 않다면 장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의사를 찾는 게 현명하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튼튼한 장을 만들려면 이밖에도 △지방을 줄이고 영양 균형이 잡힌 식사를 하고 △반드시 운동하되 과하지 않도록 하며 △절주하고 금연하며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