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 시내 한 오피스텔 건물에 설치된 전기계량기. 2023.5.8/뉴스1
2분기 전기요금 결정이 다음 주로 또 연기됐다. 정부와 여당은 어제 당정협의회를 열고 전기료 인상안을 결정할 예정이었지만 한국전력의 자구 노력 미흡 등을 이유로 하루 전날 회의를 취소했다. 당초 3월 말 확정됐어야 할 2분기 전기요금 조정이 40일 넘게 미뤄지고 있는 것이다.
서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하면 전기료 인상을 놓고 고심하는 정부·여당의 고충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3월 말부터 지금까지 에너지요금 인상을 위해 4차례나 당정 간담회를 열고도 결론을 내지 못하더니, 이번에 또 세부 조율이 필요하다며 회의 자체를 보류한 것은 지나치다. 국정 지지율이나 내년 총선을 의식한 ‘눈치 보기’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원가의 70%도 안 되는 현행 전기요금 구조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한전은 지난해 사상 최대인 32조 원대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올 1분기에도 5조 원이 넘는 적자를 낸 것으로 추산된다. 오죽하면 한전 주요 주주인 영국 투자회사가 최근 “대규모 적자를 내는데도 왜 요금을 못 올리느냐”는 취지의 항의 서한을 보냈겠나. 경제 논리가 아닌 정치 셈법으로 접근한 전기료 왜곡이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한국 대표 공기업의 신뢰도 추락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데도 요금 현실화를 미룬다면 5년 내내 손 놓고 있다가 에너지 공기업의 부실을 눈덩이처럼 키운 지난 정부와 다를 게 없다. 비정상적이었던 전기료를 정상화하고, 에너지 과소비 구조를 해결하는 데 더 이상 정치적 계산이 개입돼서는 안 된다. 요금 결정 과정에서 외풍을 차단할 수 있도록 전기위원회를 독립기구로 격상하는 방안을 서둘러야 한다. 한전 역시 임원 성과급 반납 같은 보여주기식 자구책이 아닌 강도 높은 구조개혁으로 고통 분담에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