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따뜻한 밥 한 공기만큼 우리의 마음을 달래는 음식이 또 있을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의 일생과 함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쌀밥은 언제부터 우리와 함께했을까. 원래 벼는 아열대의 식물로 한국 토착의 곡물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신석기시대부터 조금씩 우리와 함께하던 쌀은 3000년 전 우리의 선조가 논농사를 짓고 고인돌을 만들면서 우리의 주식이 되었고 후에 일본으로도 전해졌다는 것이다. 어쩌다가 아열대의 곡식이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을까. 우리의 선조들의 위대한 시도로 태어난 쌀밥의 시작을 알아보자.》
우리가 기름진 쌀을 좋아하는 이유
벼는 크게 인디카와 자포니카로 나뉜다. 인디카 쌀은 동남아 지역에서 주식으로 하는데 찰기가 없고 길죽하다. 반면에 자포니카 쌀은 우리가 흔히 먹는 찰기가 있고 동글한 쌀이다. 한국과 일본을 제외하면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부슬부슬 날아가는 인디카 쌀을 더 선호한다. 그리고 한국의 남해안 일대와 일본 열도에서도 야생에서는 인디카 계통의 벼가 자랄 정도이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사람들만 특이하게 윤기가 흐르는 찰진 쌀만을 좋아하는데, 사실 그 배경에는 수천 년의 역사가 숨어 있다.
야생의 벼는 대체로 빙하기가 끝난 직후인 1만 년쯤 전에 중국 남부 양쯔강 유역에서 처음 재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7000년 전부터 논농사가 시작되면서 쌀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재배종으로 바뀌는데, 이때부터 자포니카 종이 선택되었다. 최초의 논이 양쯔강 유역에서 등장한 이유는 그 지역의 지리 환경과 관련이 있다. 이 지역은 갈대로 덮인 강가 근처의 소택지가 많이 발달했다. 이런 소택지에서 다른 곡식은 재배하기 어렵지만 쌀은 예외였다. 볍씨는 오히려 소택지에서 별다른 관리를 하지 않아도 잘 자랐다. 양쯔강 유역에서 만들어진 최초 논의 수확량을 추산한 결과 1ha에 900kg 정도로 지금 한국 논에 비하면 7분의 1 정도 수준이었다. 이렇게 쌀을 물속에서 키우면 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잘 자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후 논농사는 산둥반도와 만주 일대로 확산되었다.
우리나라에 논농사가 본격적으로 전해진 때는 약 3000년 전으로 산둥반도와 랴오둥반도를 거쳐서 벼농사가 남한 일대로 널리 확산되면서다. 쌀만 내려온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도 만주에서 전해졌다. 청동기, 고인돌 등 새로운 문화가 논농사와 함께 들어오면서 한반도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아열대가 아닌 한국에서 쌀이 잘 자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비교적 추운 중국 북방지역을 거치면서 천천히 온대지역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품종으로 개량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전해진 쌀이 지금도 우리가 좋아하는 찰기가 흐르는 자포니카종이다.
3000년 이어온 쌀밥의 역사
아열대 곡식이었던 쌀은 약 3000년 전 남한 일대로 퍼지면서 한국의 주식으로 자리 잡았다. 충남 논산시 연무읍 마전리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 논 유적. 우물 2기와 함께 저지대 구릉에서는 물을 인공적으로 막기 위한 보와 물웅덩이 등이 발견됐다. 고려대 고고환경연구소·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전남 영암군 너른 들판에 만들어진 고인돌. 농경시대 사람들은 힘을 모아 고인돌을 만들고 제사를 지내며 풍년을 기원했다. 강인욱 교수 제공
청동기시대 제사 문화를 담은 ‘농경문청동기’(보물 제1823호). 벌거벗은 채 밭을 가는 남자와 솟대, 그리고 술 단지가 묘사돼 있다. 고려대 고고환경연구소·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최근 연구에 따르면 3000년 전에 처음 만들어진 논은 그 이후로 1500년이 지난 삼국시대까지도 중단 없이 계속 만들어졌고 벼도 안정적으로 재배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청동기시대 논바닥과 수로에서 발굴된 나무로 만든 농사기구는 삼국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의 것과도 거의 차이가 없다. 3000년을 이어온 놀라운 쌀밥의 역사는 한반도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들은 일본 규슈 지역을 거쳐서 일본 열도의 문화를 바꾸는 야요이 문화를 태생시켰다.
韓에서 성공한 쌀농사, 日에 전해져
쌀밥이야말로 북방과 남방의 문화가 절묘하게 조합된 결과물이다. 아열대에서 기원한 쌀이 북만주 지역의 발달된 문화와 결합해 기름진 땅의 남도지방으로 내려와서 한국만의 쌀문화로 꽃피었기 때문이다. 음식에서 자기가 원산지이고 기원지임을 고집하는 것만큼 의미가 없는 것은 없다. 한국의 쌀이 가치 있는 이유는 기원지라서가 아니다. 벼농사를 매개로 한국이 성공적인 농경 공동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남한에서 성공한 쌀농사의 문화는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인의 기원을 이루었으니, 3000년 전 한국인의 과감한 선택이 동아시아 역사를 바꾼 것이다. 진정한 한국의 탄생은 따뜻한 밥 한 공기에서 시작된 셈이니, 밥 한 그릇에 수천 년 우리의 역사가 녹아 있다는 이야기는 결코 문학적 서사가 아니라 고고학이 전하는 사실이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