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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대부업 퇴짜… 자영업자, ‘이자 1100%’ 사채 쓰기도

입력 | 2023-05-12 03:00:00

[불법 사금융 내몰린 자영업]
대부업 대출 82% 급감… 불법사채 내몰린 자영업
69곳 대출 1조1344억→2052억
치솟는 조달금리에 대출중단-축소
급전 필요 영세업자들 불법사채로… “취약 대출자 선별해 채무 조정을”




반찬가게와 식당 등 가게 3개를 운영하던 A 씨(43·여)는 줄어든 매출로 현금이 부족해지자 지난해 불법 사금융을 이용했다. 사업자대출과 신용대출로 이미 1억 원을 받아 제도권에서는 더 이상 돈을 빌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500만 원만 쓰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돈이 필요한 곳이 계속 늘면서 10개월 동안 약 2000만 원을 이용했다. 원금이 늘면서 매월 납입하는 돈은 계속 불어났고 불법 사금융 업체 두 곳에 갚아 나간 금액은 결국 4000만 원이 됐다. A 씨는 “돈을 빌릴 곳은 없고, 당장 거래업체에 지급할 대금은 없다 보니 이자가 불어날 걸 알지만 불법 사금융까지 이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제도권 금융에서 돈을 빌리지 못한 자영업자들이 불법 사금융으로 빠지고 있다. 대부업체들은 법정 최고금리 규제에 막혀 신규 대출을 중단하거나 줄이고 있고, 저축은행도 대출 문턱을 잇달아 높이면서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것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69개 대부업체의 신규 대출은 지난해 1분기 1조1344억 원에서 올해 1분기 2052억 원으로 급감했다. 1년 만에 무려 81.9%나 감소한 수치다. 신규로 대출을 받은 사람들 역시 같은 기간 9만1024명에서 2만6767명으로 줄었다. 1인당 대출액도 1246만 원에서 767만 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는 조달금리가 급격히 오른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부업체들이 신규 대출을 중단하거나 줄여 왔기 때문이다. 대부업체들은 저축은행, 캐피털 업체에서 돈을 빌리거나 회사채를 발행해 대출 재원을 마련하는데, 이 조달금리가 8∼10% 수준까지 치솟은 상황이다. 여기에 인건비, 광고비 등을 제외하면 사실상 법정 최고금리 20% 수준에서 대출을 하더라도 수익을 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대부업계의 설명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저소득 자영업자 대출이 빠르게 늘어났다. 취약 대출자를 선별해 금융당국이 채무를 적극 조정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대부업체마저 신규대출 축소
작년 자영업자 대출 1000조 돌파
70%가 다중채무… 연체율도 껑충
“법정 20%에 묶인 최고금리 조정… 대부업 대출 확대 유도해야” 지적




자영업자 이모 씨(46)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영업이 타격을 입자 운영하던 식당 2곳 중 1곳을 정리했다. 경영난으로 자금이 필요할 때마다 은행 개인사업자 대출과 당국의 정책 금융상품, 심지어 불법 사금융까지 모두 끌어썼고 그 과정에서 늘어난 빚이 1억5000만 원에 달했다. 이 씨는 “현재 채무조정을 신청했고, 감면액이 크지 않을 경우 개인회생까지 고민하고 있다”며 “코로나19 때 받은 대출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빠르게 불어난 자영업자 대출이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자영업자들의 부채는 지난해 말 이미 1000조 원을 넘어섰고, 경기가 악화하면서 연체율까지 동반 상승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대부업체나 저축은행들도 신규 대출을 조이면서 급전이 필요한 영세 자영업자들이 대거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1000조 원 넘어선 자영업자 대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한국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1019조8000억 원으로 1년 전(909조2000억 원)보다 110조6000억 원 증가했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인 2019년 말까지만 해도 대출 잔액은 684조9000억 원에 그쳤지만 3년 만에 50%가 불어난 것이다.

연체율도 꿈틀거리고 있다.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2021년 0.16%까지 줄어들었지만 작년 말에는 다시 0.26%까지 올랐다. 특히 같은 기간 소득 하위 30%인 취약 자영업자의 연체율은 0.8%에서 1.2%까지 가파르게 치솟았다.

자영업자 중 절반 이상인 56.4%(173만 명)는 3곳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동시에 돈을 빌린 다중 채무자로 집계됐다. 다중채무자의 대출 잔액은 720조3000억 원으로 전체 자영업자 대출액의 70.6%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여러 곳에서 빚을 지고 있는 만큼 일단 한 곳에서 대출을 못 갚으면 다른 곳에서도 연쇄적으로 연체를 일으킬 위험이 높다.

상황이 절박해진 자영업자들은 정부가 지원하는 정책 금융상품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따르면 자영업자 채무조정을 위한 새출발기금 신청자는 지난달 말 기준 2만3067명까지 늘고, 채무금액은 3조4805억 원으로 집계됐다. 새출발기금은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들에게 대출 원금 또는 이자를 감면해주는 프로그램이다.



● 제도권 금융 문턱 낮아져야
최근에는 저신용자들의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대부업체나 저축은행들도 대출을 줄이면서 영세 자영업자들이 사채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2021년 법정 최고금리가 연 24%에서 20%로 인하된 후 최대 3만8000명의 대부업 이용자가 불법 사금융 업체의 문을 두드린 것으로 추정했다. 금융감독원의 또 다른 실태 조사에 따르면 불법 사금융을 이용한 사람의 약 70%는 제도권 금융사에서 대출 또는 만기 연장을 실제 거부했거나 스스로 금융기관 대출을 못 받을 것으로 생각해서 사채를 쓰게 됐다고 응답했다. 이용한 불법 사채의 최고금리는 무려 연 1100%에 달했다.

이에 자영업자들이 사금융에 내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현재 20%로 묶여 있는 법정 최고금리를 시장 상황에 맞춰 유동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법정 최고금리를 인상하는 등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대부업체에도 길을 열어줘야 자영업자들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국회에서는 20%인 최고금리를 오히려 12∼15%로 더 낮춰야 한다는 취지의 법률 개정안들이 발의돼 있다.

금융당국은 새출발기금으로 자영업자를 지원하는 한편 금융권의 선제적인 채무 조정도 유도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금융사들이 대출자의 상황에 맞춘 채무 조정 등 맞춤형 지원에 나서도록 계속 소통하고 있다”며 “형편이 더 힘든 자영업자라면 새출발기금을 통해 탈출구를 마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윤명진 기자 mjlight@donga.com
송혜미 기자 1am@donga.com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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