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꼭 5일이나 일을 해야 할까요. 주 4일만 근무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당연히 임금이 깎일 거라고요? 기업 전체 생산성이 줄지 않는다면 임금 삭감 없이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이야기에 동의하시나요, 아니면 불편한가요. 최근 여러 국가에서 ‘주 4일제’로의 전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추세입니다. 여유 넘치는 복지국가 얘기라고요?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주 4일제는 복지보다는 일하는 방식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주 4일 근무제를 둘러싼 해외 논의와 함께 한국 기업의 사례를 취재했습니다.
직장인 온라인 교육사업을 하는 휴넷은 지난해 7월 1일 공식적으로 주 4일제를 시행 중이다. 일부 고객 접점 부서를 제외한 모든 직원은 월~목요일 근무하고 금~일요일은 쉰다. 휴넷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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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전부터 이어진 ‘주 4일제’ 꿈
“주 4일제는 멀리 않은 미래입니다. 이는 꿈이나 허황된 얘기가 아니라 지난 4년 성과에 기반한 예측입니다. 우리는 10년 안에 모든 사람의 생활 수준을 두배로 높이기를 희망합니다.”한마디로 주 4일 근무제는 최근에 갑자기 튀어나온 얘기가 아닙니다. 반세기 넘게 전 세계 정부와 정치권, 노동자들, 그리고 일부 기업들도 주목해왔던 이슈입니다. 다양한 시도도 예전부터 있었고요. 하지만 벨기에(2022년 2월 주 4일제 공식 도입) 같은 일부 국가 빼고는 좀처럼 주 4일제가 자리잡지 못했습니다. 이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옵니다. ‘인간의 관성 탓이다’, ‘일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됐다’, ‘소비주의의 부상 때문이다(여가보다 사치품을 선택)’ 등등.
사그라들던 주 4일제의 불씨를 되살리려는 국제적인 움직임이 나타났습니다. 2019년 출범한 ‘4데이위크글로벌(4 Day Week Global)’이란 비영리단체가 그 중심에 있는데요. 뉴질랜드 기업가 앤드류 반스가 설립한 이 단체는 보스턴칼리지, 케임브리지, 옥스퍼드대학 학자들과 함께 대대적인 주 4일 근무제 실험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주목할 만합니다.
주 4일제, 기업은 왜 선택하나
주 4일제는 근로자의 번아웃을 막고 만족도를 높이는 효과가 확실히 있다. 게티이미지
보고서 따르면 참여 기업의 92%인 56개 기업이 실험 이후에도 주 4일제를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이 중 18개 회사는 주 4일제 전환이 영구적이라고 밝혔고요. 꽤 긍정적 결과입니다. 왜 그럴까요.
연봉을 얼마 올려주면 현재 주 4일인 직장에서 다른 주 5일제 직장으로 이직하겠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 왼쪽부터 10% 미만, 10~25%, 26~50%, 50%, 아무리 많은 돈으로도 안 된다는 응답. 자료: 4데이위크글로벌
동시에 ‘장시간 근무 문화가 과연 기업 성과에 도움이 되느냐’에 대한 회의론도 컸다고 합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기업의 CEO는 이렇게 말했죠. “밤 10시까지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밤까지 여기 있을 테니 내가 필요한 일만 하자’라고요.”
그래서 이들 기업의 실적은 어땠을까요. 이 부분이 가장 놀라운데, 실험 기간 참여기업의 매출은 평균 1.4% 증가했다고 합니다. 근무시간이 줄었는데 전체 매출은 줄지 않은 거죠. “프로젝트 시작 전 많은 사람들이 근무시간 감소를 상쇄할 만큼 생산성이 향상되진 않을 거라고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것(생산성 향상)이 우리가 발견한 겁니다.”(브렌단 뷔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
주 4일제를 하면 더 바빠질 수밖에 없다. 게티이미지
-회의 시간을 단축하고 빈도를 줄인다. 회의는 명확한 의제를 가지고 짧게 한다.
-직원들이 제조공정의 각 단계를 분석해 시간 절약 방법을 파악하고 생산 목표치를 새로 세운다.
-‘집중근로시간’을 도입해 직원들이 방해받지 않고 일하게 한다.
-업무의 일부를 자동화한다(예-이메일 템플릿 도입).
-다음 날 바로 업무를 시작할 수 있도록 퇴근 전에 작업목록을 작성한다.
-특정 프로세스에 관여하는 직원 수를 줄인다.
한마디로 주 4일제에 맞춰 쓸데없는 일을 줄이고 업무시간을 더 타이트하게 보내면서 효율성을 높인 겁니다. 자연히 업무시간은 더 바빠지고 신경 쓸 건 더 많아집니다. 그럼 더 스트레스 받는 게 아니냐고요? 이에 대해 맥주회사 창업자는 연구팀에 이렇게 얘기합니다.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건 바빠서가 아니라 통제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더 바쁘면서 덜 스트레스 받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바쁘다면 일이 잘 되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앤드류 반스와 퍼펙추얼가디언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서 영국 저널리스트 요한 하리의 책 ‘도둑맞은 집중력’에도 소개됐는데요. 이 책에서 스탠퍼드 대학의 조직행동학 교수 제프리 페퍼는 근무시간 단축의 효과가 명확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아무 스포츠 팬에게나 물어보세요. 축구경기에서 이기고 싶으면 우리 팀이 탈진하기를 바랄까요? 나머지 사람들은 다를 이유가 뭐죠?”
임금 손실은 불가피?
의료나 소매업, 제조업의 경우 생산성 손실 없는 주 4일제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많다. 로펌이나 컨설팅회사처럼 시간당으로 비용을 책정하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게티이미지
독일 코블렌츠대학 교수 스테판 셀은 “생산성이 전보다 향상됐다고 해도 많은 분야에서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20% 단축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독일 매체 도이칠란드풍크쿨투어 인터뷰). 특히 관리, 소매, 물류 분야처럼 숙련된 인력이 부족한 분야에서는 인력난이 더 극심해질 거라고 얘기합니다.
이에 대해 독일 카를스루에공과대학의 필립 프레이 연구원은 정반대 입장인데요. “숙련된 노동자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면 더 나은 근무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주 4일제가 되레 필요하다는 거죠.
특히 레스토랑과 소매업, 의료서비스 같은 분야는 주 4일제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근무시간을 줄이면 그만큼 생산성이 감소할 수밖에 없는 분야라는 겁니다. 이런 영역은 시간 단위로 근무량이 측정되기 때문에 ‘주 4일제=임금 손실’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공장을 가동하는 제조업 분야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성공 사례 나올까
한국에서도 주 4일제를 하는 회사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급여 삭감을 전제로 한 주 4일제를 시범운영하는 단계이거나(세브란스병원), 비상경영을 이유로 주 5일제로 회귀한 경우(에듀윌)도 나타났죠. 100(급여)-80(근로시간)-100(생산성)의 원칙을 지킨다는 게 그리 쉽지가 않은데요. 한국에서 드물게 임금 삭감 없는 주 4일, 32시간제를 도입한 기업이 있어 10일 찾아갔습니다. 직장인 온라인 교육기업인 휴넷인데요. 6개월의 시범운영을 거쳐 지난해 7월 1일자로 금요일에 쉬는 주 4일제를 공식적으로 도입했습니다.
초기엔 영업을 위해 고객을 만나야 하는 부서에선 걱정이 컸다고 합니다. 관리자들은 ‘팀원 관리만 어려워진다’, ‘팀원은 쉬고 팀장은 못 쉬는 것 아니냐’며 주 4일제 도입 자체를 반대하기도 했다는데요. 하지만 경영진이 강력하게 밀어붙였고 이제 자리 잡아 가는 중입니다. 대면업무가 필요한 부서의 경우엔 금요일 아닌 다른 요일에 돌아가며 쉬는 식으로 길을 찾았다는데요.
주 4일제 실시로 휴넷에서 가장 많이 바뀐 것 중 하나가 회의 문화이다. 관례적으로 해오던 회의를 없애거나 줄여 근무시간 낭비를 줄이고 있다. 휴넷 제공
휴넷의 주 4일제에 대한 직원 설문조사 결과. 자료: 휴넷
휴넷은 주 4일제를 도입할 때부터 ‘복지가 아닌 생산성 향상이 목적’이라고 직원들에게 강조했는데요. 근무시간이 줄어든 대신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프로젝트를 전사적으로 대대적으로 진행 중입니다. 안 해도 되는 일은 과감히 버리고, 관습적으로 하던 회의는 없애고, AI 챗봇을 업무에 쓰는 식이지요. 회사 경영 성과는? 주 4일제 이후 더 좋아졌는데요.
주 4일제를 성공시켜야만 한다는 직원들의 노력 덕분이라는 게 이 회사 문주희 인재경영실장 얘기입니다. “결국 올 연말 기준으로 회사가 계속 성장했느냐로 생산성을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직원들 스스로 ‘우리가 같이 잘해서 주 4일제를 성공시키자’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죠.”
그렇다 보니 업무시간은 더 바빠졌고, 저성과자에 대한 피드백은 좀더 냉정해졌습니다. 동료 평가를 할 때 주 4일제만 누리고 일은 제대로 안 하는 ‘프리 라이더’에 대한 견제가 강해진 겁니다.
주 4일제로 얻은 또다른 소득은 채용시장에서의 경쟁력. 확실히 주 4일제 도입 이후 이력서를 받아보면 지원자들 수준이 높아진 게 눈에 띈다는데요. 기존 직원들의 이직률을 낮추는 효과도 상당하다고 합니다. 이 회사 연구원인 염호윤 사원 역시 “친구들이 ‘나도 거기 가고 싶다’는 반응”이라고 말하더군요.
물론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중견기업이고 CEO의 강력한 의지가 뒷받침됐기 때문에 파격적인 주 4일제 도입이 가능하긴 했습니다. 실제 많은 기업 인사팀들이 휴넷에 주 4일제와 관련해 문의하면서 다들 처음 물어보는 게 “급여를 조정한 거죠?”라고 합니다. 급여를 100% 다 준다고 하면 깜짝 놀라고요. “진짜 (주 4일제) 하는 건가요?”라는 질문도 많이 받는다는데요.
선도적으로 주 4일제를 도입한 만큼 ‘우리가 잘해서 모범사례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문주희 실장은 얘기합니다. 휴넷이 과연 뉴질랜드 퍼페추얼가디언 못지 않은 또다른 주 4일제 성공사례가 될 수 있을까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해서 지켜볼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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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4일제를 하는 기업 사례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휴넷 직원들에 따르면 주 4일제 도입 관련 기사에 달리는 댓글 대부분이 악플이라고 합니다. 단순히 ‘부럽다’는 반응이 아니라 악플이 달린다니 의외였는데요. 다양한 의견은 환영하지만 악플은 사양합니다. 주요 내용을 정리하자면
-반세기 넘게 이어진 ‘주 4일제’에 대한 구상은 아직도 꿈일 뿐일까요. 최근 다시 주 4일제를 확산시키기 위한 글로벌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4데이위크글로벌’이 주도한 주 4일제 실험 결과가 발표됐는데요. 참여한 61개 영국 기업 중 56곳이 임금 삭감 없는 주 4일제를 계속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근로자 만족도가 높을 뿐 아니라, 기업의 실적도 나빠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근로시간 단축을 생산성 향상으로 상쇄하려면 업무 효율성이 대폭 높아져야 합니다. 업무 공정을 분석하고 쓸데없는 시간을 줄이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한국에선 휴넷이 지난해 7월부터 급여 조정 없는 주 4일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근무시간은 줄었지만 기업 실적은 오히려 좋아졌다는데요. 과연 성공적으로 자리잡을지 지켜봐야 겠습니다.
*이 기사는 1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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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