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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번-왕이, 미중 전방위 갈등 악화 속 회동…대화 모멘텀 찾았나

입력 | 2023-05-12 13:36:00


바이든 행정부가 미·중 긴장을 관리하기 위해 최근들어 중국에 ‘대화 시그널’을 내보내고 있는 가운데, 미중 외교·안보 사령탑이 제3국에서 예고 없이 회동을 가졌다.

이는 정찰풍선 사건을 계기로 미·중 관계가 경색된 이후 사실상 첫 고위급 만남인데, 미중이 최근 일련의 갈등을 뒤로한채 관계 개선의 모멘텀을 만들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외신을 종합하면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0일(현지시간)부터 이틀간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과 오스트리아 빈에서 회동했다.

이번 회동은 지난 2월 초 중국의 정찰풍선 사태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방중이 전격 연기된 이후 3개월여만에 이뤄져 눈길을 끌었다. 두 인사는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미국 경유 방문을 앞뒀던 지난 3월24일 비공개리에 전화통화를 한 바 있지만, 왕 위원이 중국의 외교라인 1인자로 올라선 이후 별도의 양자 회동을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설리번-왕이, 오스트리아서 전격 회동…‘정찰풍선 사태’ 이후 3개월만

설리번과 왕이는 이번 회담에서 미중 관계를 둘러싼 핵심 현안과 세계·역내 안보 문제, 우크라이나 전쟁, 양안 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미 고위당국자에 따르면 설리번 보좌관은 왕 위원에게 “미중이 경쟁 관계에 있지만 이것이 갈등이나 충돌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강조했고, 대만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엔 변함이 없으며, 대만 해협에서 일방적인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미 백악관도 “이번 회동은 개방된 소통 라인을 유지하고 경쟁을 책임 있게 관리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의 일환이었다”면서 “양측은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간 약속을 바탕으로 이같은 목표를 진전시키기 위해 중요한 전략적 소통 채널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이날 왕 위원은 대만에 대한 엄중한 입장을 포괄적으로 설명했다면서 “설리번 보좌관과 전략적인 대화 채널을 계속해서 잘 활용하기로 합의했다”고 중국 신화통신은 전했다.

주미중국대사관 역시 이날 성명을 통해 “양측은 미중 관계의 걸림돌을 제거하고 관계를 안정화하기 위한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이번 설리번 보좌관과 왕 위원의 전격 회동으로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간 전화통화나 회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흘러나오고 있지만, 미 고위당국자는 이날 회담에서 양국 정상간 통화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 ‘해빙 무드’ 뚜렷…美, 미중 고위급 접촉 요청

이날 회동은 바이든 행정부가 관계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중국과 접촉을 시도하는 가운데 나왔다.

실제 블룸버그통신은 전날(11일) 바이든 행정부가 미중 정상간 전화 통화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이는 미국이 긴장 완화를 위해 충분한 노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아와 유럽 파트너들에 보여주기 위한 의도라고 설명했다.

이 전략이 성공할 경우 미국은 중국과 긴장 완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반면 실패할 경우 현상의 책임을 중국에 떠넘길 수 있게된다는 것이 바이든 행정부측의 입장이다.

미중은 최근 모든 분야에서 경쟁하며 사이가 틀어졌지만, 지난 2월 미국 본토 상공으로 흘러들어온 고고도 정찰 기구 사건 이후 양국 관계는 급격히 냉각됐다. 당시 미국 정부는 정찰 기구를 중국 정부의 소행으로 봤고 이후 블링컨 장관의 방중을 비롯해 모든 고위급 대화가 전면 중단됐다.

그러나 최근들어 미중간 긴장이 완화될 수 있다는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

이날 설리번과 왕이의 회담 외에도 친강 중국 외교부장이 최근 니콜라스 번스 주중 미국 대사를 만나 ‘미중 관계를 올바른 궤도로 되돌리기를 희망한다’고 발언한 것부터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 회의를 계기로 중국 상무부 장관을 만날 가능성까지, 3개월 전과는 확연히 다른 ‘해빙 무드’가 조성되고 있다.

그간 번스는 고위급 회담을 대부분 거부당했기 때문에 친강과 번스의 회동은 미국에 대한 페널티가 끝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밖에도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오는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리상푸 중국 국무위원 겸 국방부장에게 회담을 제안하고 있다. 오스틴 장관은 “중국과 소통 라인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중국 국방부장과 몇 차례에 걸쳐 접촉을 이어왔다”고 말했다.

◇ 中 “대화 원하면서 억압? 한 입으로 두말 마라”

미국이 중국에 대화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가운데 중국은 미국이 긍정적인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화 의사를 표명하는 한편 중국을 억압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1일 정례 브리핑에서 “핵심은 미국이 한편으로는 소통을 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을 계속 압박하고 억제한다는 것”이라면서 “우리는 미국 이 중국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고, 중국의 이익과 레드라인을 존중하며 중국의 주권, 안보, 발전 이익을 훼손하는 행위를 중단하기를 촉구한다”고 했다.

중국 관영지인 글로벌타임스도 “미국이 중국을 억압하면서 대화 의사를 표명해서는 안 된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고 중국의 이익을 존중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윤선 스팀슨센터 동아시아·중국 담당 국장은 최근 설리반의 브루킹스 연구소 연설을 비롯해 지난 한 달 간 미국 관리들의 우호적 어조에 주목하며 (미중 관계 개선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분석했다.

실제 바이든 행정부는 그간 미중 관계가 더 이상 대립으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해 ‘가드레일’(안전장치)을 원한다고 말했지만 최근들어 어조는 비교적 절제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선 국장은 “중국이 외교 채널을 폐쇄한 것은 ‘중국이 무엇을 하든 미국의 정책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 비롯됐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과 더 이상 협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로버트 달리 윌슨센터 국장은 “중국은 반년 가량 미국이 사용하던 ’가드레일‘ 용어를 거부했지만, 한편으로는 유사한 의미의 ’안정(stability)‘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미중이 관계를 정의하는데 있어 합의할 수 있는 용어를 찾은 것은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미국이 수출을 추가적으로 통제하거나, 미국의 대중국 투자에 대해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와 같은 검토를 시작하거나, 중국의 인권에 대해 비판한다면, 혹은 자국 영토에서 또 다시 정찰 풍선과 같은 사건이 발생한다면 과연 소통이 유지될지 회의적”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