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수도권의 한 초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 A 군(8)을 등교시키던 학부모는 책가방에 달려있는 손가락 크기만한 액션캠 사용법을 알려주며 이렇게 말했다. 이 부모는 “오죽했으면 이런 카메라까지 달아서 학교를 보내겠느냐”며 “자녀를 보호하려면 스스로 증거를 모아야 억울한 일을 피할 수 있는 게 현실”이라고 하소연했다.
● 2차 가해 ‘맞폭’ 에 시달리는 피해자들
앞서 A 군은 지난해 11월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려다 같은 학교 3학년 여학생 3명으로부터 아무런 이유 없이 욕설과 함께 폭행을 당했다. 왼팔이 뒤로 꺾인 채 주먹으로 머리와 몸을 얻어맞았다. 이 사건으로 트라우마가 생긴 A 군은 한 대학병원에서 소아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A 군 부모는 “가해 학생들 부모들까지 진술을 맞추는 바람에 A 군도 학폭 1호 처분을 받았다”며 “처분 무효를 위해 행정심판을 제기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고 가해 학생들에 대해서는 형사 고소까지 했다”고 말했다. 가해 학생 측도 A 군을 명예훼손죄로 맞고소하고 최근 자택 인근까지 찾아오자 A 군 부모는 추가 폭행이 벌어질 경우 증거 수집을 위해 15만 원 상당의 액션캠을 구입해 A 군에게 달아줬다.
A 군 사례처럼 학폭 가해자가 피해자를 역으로 신고하는 ‘맞폭’ 사례가 최근 늘고 있다. 특히 피해 정도가 크지 않아 명백하게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기 어렵거나, 폭행을 입증할 객관적인 증거가 부족한 경우 맞폭이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학부모들은 변호사 조언을 통해 액션캠과 녹음기를 구입해 증거 수집을 일상화하고 있다. 맞폭을 경험한 한 부모는 “아이에게 손목시계형 액션캠을 채워서 가해자와 마주칠 때엔 반드시 녹화하라고 알려줬다”고 했다.
● 늘어난 ‘맞폭’에 교육 당국도 골머리
동아DB
전문가들은 현장 교사가 학폭 입증 과정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해준 학교폭력연구소장은 “최근엔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경우 교사들이 학폭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있다”며 “평소 피해 학생이 처한 환경에 대한 교사들의 증언이 학폭 심의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교사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