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휘슬러의 작품과 아시아 도자기를 비교하고 있는 찰스 랭 프리어. 사진: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 제공
오늘은 국립아시아미술관(NMAA)을 만든 장본인, 찰스 랭 프리어(1854~1919)의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국립아시아미술관은 미국 워싱턴에 처음으로 생긴 미술관으로(1923년 설립), 올해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이 미술관이 생기도록 소장품은 물론 건물까지 기증한 사람이 바로 찰스 랭 프리어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만나보겠습니다.
5개월의 협상 끝에 프리어의 뜻은 받아들여졌습니다. 그가 이 무렵까지 수집한 미국과 아시아 미술품 2250점을 포함해 사망하기까지 모은 미술품들을 기증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프리어가 세상을 떠난 뒤인 1923년, 그가 남긴 9500여 점의 미술품을 토대로 아시아 미술 전문 기관인 ‘프리어 갤러리’가 워싱턴에 세워졌습니다.
학교 대신 시멘트 공장 갔던 소년
사진: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NMAA) 제공
1856년 미국 뉴욕 킹스턴 지역에서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14세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중학교를 다 마치지 않았을 때 시멘트 공장에 취직해 돈을 벌었죠. 그러다 철도 사업을 하던 상사의 눈에 띄어 관련 업계에 종사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예술품 수집을 시작한 것은 1890년대 무렵. 이 때 미국의 경제 사정 악화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프리어는 신경 쇠약을 앓게 됩니다. 1899년 업계에서 은퇴한 그는 여행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예술에 눈을 떴습니다.
제임스 휘슬러와의 만남
프리어가 수집한 도자기가 놓인 피콕룸의 모습. 이 방은 휘슬러가 디자인했다. 사진: NMAA 제공
미술관의 미국 미술 담당 큐레이터 다이애나 그린월드는 “프리어의 소장품 중 1000여 점이 휘슬러의 작품이며, 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휘슬러 컬렉션”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휘슬러의 작품에 반한 프리어는 그가 있는 영국 런던을 직접 찾아 만나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시아 미술에 큰 관심을 가졌던 휘슬러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프리어의 휘슬러 사랑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바로 미술관에 영구 설치된 ‘피콕 룸’입니다. 피콕 룸은 1876년 영국 런던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영국의 운수 사업가 프레데릭 리랜드의 의뢰로 만들어졌지만, 리랜드는 최종 디자인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고, 당초 약속했던 값의 절반만을 휘슬러에게 지불했습니다. 이후 1904년 경매에 나온 이 방을 프리어가 구매했고, 27개 상자에 해체에 담아 미국으로 옮겨왔고 이 때 엄청난 화제가 되었습니다.
영국에서는 이 방에 청화백자를 놓았지만 프리어는 이것이 너무 뻔하다고 여겼다고 합니다. 대신 프리어는 휘슬러의 작품 속 안개가 낀 풍경처럼 어딘가 낡은 듯한 분위기를 좋아했고, 자신의 취향에 맞게 아시아 각 지역의 도자기들을 다시 배치했습니다. 여기에는 고려 청자도 포함되었고, 1908년 사진의 모습을 복원한 현장을 지금 워싱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술로 유산을 남기다
동양화를 감상하는 프리어. 사진: NMAA 제공
프리어가 기증한 건물 내에 소장품 외 다른 것을 전시하거나 외부로 대여하지 않는다는 조건도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습니다. 또 프리어 갤러리는 그가 기증한 것 외에 다른 기부를 받지 않고 있으며, 이사회의 승인을 거쳐 작품 구매를 통해 소장품을 늘리는 것만 가능합니다. 프리어가 자신의 컬렉션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죠.
특히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휘슬러의 작품을 중심으로 예술의 맥락을 선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 것 같다고 그린월드 큐레이터는 이야기했습니다. 삶에서 이룰 수 있는 여러 형태의 성취 가운데, 프리어는 예술로 자신의 유산을 남기길 원했고 그것을 얼마나 철저히 추구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었습니다.
미국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 프리어 갤러리 전경. 사진: NMAA 제공
※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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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