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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뛰는 아내 ‘보호’하려다…23년째 함께 달리는 부부[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입력 | 2023-05-13 12:00:00

조깅으로 시작해 보스턴 완주까지… 부부동반으로 정복한 달리기




김영례(오른쪽)-윤상문 씨 부부가 3월 19일 열린 2023년 서울마라톤 겸 제93회 동아마라톤에 출전해 출발 전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이 부부는 2001년부터 23년째 함께 매년 2회 이상 풀코스 마라톤대회에 출전하며 부부의 정도 쌓고 건강도 챙기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마라톤으로 참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전 살도 많이 빠졌고 혈압약도 끊었어요. 저나 남편이나 아무 질병 없이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평생 함께 달릴 겁니다.”

지금은 다니던 회사에서 정년 퇴임하고 새로운 노년을 만들어가고 있는 김영례(65)-윤상문 씨(67) 부부는 2001년부터 함께 마라톤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23년째 매년 42.195km 풀코스를 2회 이상 함께 완주하며 부부의 정을 쌓고 있다. 풀코스 완주 횟수는 김 씨가 50여 회, 윤 씨가 60여 회다. 3월 19일 열린 2023년 서울마라톤 겸 제93회 동아마라톤 때도 함께 4시간 37분대에 완주했다.

시작은 단순했다. 2000년 12월 살을 뺄 요량으로 김 씨가 먼저 달리기 시작했고 이듬해 초 남편 윤 씨가 따라 뛰었다. 윤 씨는 직장 다니기 때문에 밤마다 뛰는 아내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같이 달렸다. 당시 한창 마라톤 붐이 일 때는 대부분 남편이 먼저 빠져든 뒤 주말마다 집을 비우는 남편을 ‘감시’하기 위해 아내가 따라 뛰는 경우가 많았다. 이 부부는 그 반대였다. 부부는 처음엔 그저 조깅 수준으로 달렸다. 마라톤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01년 4월 열린 마라톤대회 하프코스에 참가한 다음부터다.

김영례(오른쪽)-윤상문 씨 부부가 3월 19일 열린 2023년 서울마라톤 겸 제93회 동아마라톤에서 함께 달리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무작정 달리기보다는 목표를 가지고 달리는 게 좋을 것 같아 풀코스 완주를 위해 함께 뛰었습니다. 훈련은 주로 저녁때 달렸죠. 주중엔 매일 10㎞ 정도 달리고 주말엔 20㎞ 이상을 달렸어요. 동아마라톤 등 주요 대회를 앞두고는 30㎞ 이상 달렸습니다.”

함께 달리자 좋은 점이 많았다. 먼저 닥치는 대로 먹고도 살이 빠졌다. 김 씨는 초창기에 10㎏을 뺐고 지금은 약간 늘어 당초 체중에서 7kg 빠진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처음 목표한 다이어트에 성공한 것이다. 김 씨는 고혈압 때문에 먹던 약도 달리고 5년 뒤 끊었다. 부부 금실도 좋아졌다. 함께 뛰니 자연스레 부부의 정이 새록새록 커져 갔다. “늘 함께 땀을 흘리며 지내다 보니 서로의 눈치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고 했다. 김 씨는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달리니 부부싸움도 없어졌다. 서로를 너무 잘 이해하고 있으니 싸울 일이 없어졌다”고 했다. 지금까지 병치레 한번 없었다. 부부 금실은 아직도 좋다.

“솔직히 저희 부부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부들도 많아요. ‘이젠 소원할 때도 됐는데 아직도 붙어 다니냐?’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함께 달리면 붙어 다닐 수밖에 없어요.”

부부는 마라톤을 세계여행의 기회로도 삼았다. 가까운 일본은 마라톤 풀코스 대회는 물론 100km 울트라마라톤 대회도 출전했다. 김 씨는 2003년 남편 따라 100km에 출전해 고생하다 컷오프당한 뒤 다시는 도전하지 않고 있다.

김영례(왼쪽)-윤상문 씨 부부가 중국 압로강마라톤에 출전했을 때 모습. 김영례 씨 제공

“마라톤 시작하고 얼마 안 돼 일본에서 열린 100km 울트라마라톤에 남편과 함께 출전했어요. 남편은 완주했지만 전 컷오프 당했죠. 너무 힘들었어요. 그 이후 다시는 울트라마라톤에 도전하지 않았죠. 즐겁게 달리는 게 좋아요.”

부부는 2008년엔 도쿄마라톤을 완주했고, 2011년엔 마스터스 마라토너들의 ‘꿈의 무대’ 보스턴마라톤도 달렸다. 보스턴마라톤은 남녀 연령별 기준기록을 통과해야 출전할 수 있지만 대회 조직위가 보스턴마라톤 활성화 차원에서 여행사에 제공하는 쿼터를 받아 다녀왔다. 2018년엔 알프스산맥을 달리는 스위스 융프라우마라톤에도 갔다. 김 씨는 “내 환갑 기념으로 갔는데 너무 오르막 내리막이 많아 난 중도에 컷오프당했고 남편은 완주했다”고 했다.

김 씨는 5년여 전 겨울에 훈련하다 팔이 부러졌는데도 동아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할 정도로 마라톤에 진심이다. 그는 “발이 부러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깁스한 채로 훈련했고 동아마라톤은 깁스를 풀고 완주했다”고 했다. 윤 씨는 2년 전 발목 인대에 염증이 생겨 수술을 했음에도 달리고 있다. 윤 씨는 “병원에서도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이젠 빨리 안 달리고 즐기며 달린다”고 했다.

김영례(왼쪽)-윤상문 씨 부부가 스위스 융프라우마라톤에 출전해 달리는 모습. 김영례 씨 제공

부부는 요즘은 평일엔 주로 걷는 것으로 훈련을 대신한다. 하루 2만보에서 3만보를 걷는다. 2~3시간 소요된다. 김 씨는 서울둘레길을 걸으며 휴지를 줍는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몸이 건강하기 때문에 자원했다. 그는 “서울둘레길 아카데미에서 환경보호 자원봉사자를 모집해서 자원했다. 둘레길을 돌며 주변 휴지도 줍고 운동도 한다”고 했다. 부부는 주말에는 20km 이상을 훈련 삼아 달린다. 그리고 봄가을로 풀코스 레이스에 출전한다. 부부는 산행도 자주 한다. 지리산과 한라산, 설악산 등 유명한 산은 다 완등했다. 주말마다 달리거나 산행을 하고 있다.

김 씨의 풀코스 최고기록은 4시간 17분대, 윤 씨는 3시간 40분대. 과거엔 남편이 하프까지 함께 달려준 뒤 각자 달렸지만 지금은 4시간 30분 안팎 페이스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즐겁게 달리고 있다. 윤 씨는 “빨리 달리는 것보다 함께 달리는 게 더 즐겁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수술받기 전부터 함께 달렸는데 수술받고는 이젠 빨리 달릴 수도 없다”며 웃었다. 언제까지 달릴 수 있을까.

김영례(오른쪽)-윤상문 씨 부부가 보스턴마라톤을 완주한 뒤 모습. 김영례 씨 제공

“걸을 수 있으면 달려야죠. 아직 살날이 많은데…. 건강해야 즐겁게 살 수 있어요. 아프면 삶이 힘들어요. 우리 부부는 평생 함께 달릴 겁니다. 100살까지도요. 남들은 ‘귀찮게 왜 같이 다니냐’고 하지만 우리는 함께 여행하는 게 아주 편하고 즐겁습니다. 부부 여러분 함께 달리면 좋습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