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하다고 느낄수록 주의력-자존감 낮아져 궁핍하다는 인식 내려놔야
돈이 없는 게 문제일까, 돈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일까. 네덜란드 라이던대 연구진에 따르면 스스로가 빈곤하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부정적인 심리적 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빈곤에 대한 주관적 인식이 심리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기 위해 두 가지 실험을 진행했다. 빈곤에 대한 주관적 인식을 평가하는 데는 금융 자원 희소성 검사(PIFS·Psychological Inventory of Financial Scarcity)를 활용했다.
첫 번째 실험에서는 미국 성인 300명과 영국 성인 201명을 대상으로 PIFS와 주의력, 추진력, 기억력, 자기통제력 등 심리적 기능 사이의 관계를 검증했다. 실험 결과, 빈곤하다는 주관적 인식이 심해질수록 주의가 분산됐고 장기적 목표 설계와 실행 능력이 떨어졌다. 금전적 문제에 대한 집착에 인지적 자원을 많이 써버려서 장기적 목표를 위한 계획과 추진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분석 결과, 재무적 곤경과 PIFS 사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양의 관계가 드러났다. 재무적 곤경을 더 많이 겪는 개인이 경제적 궁핍에 대한 주관적 인식 또한 더 강하다는 뜻이다. 성실성, 정서적 안정성도 PIFS와 상관관계를 보였다. 게으르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참가자가 성실하고 안정된 정서를 가진 참가자들에 비해 스스로 더 빈곤하다고 인식했다. 또 빈곤하다는 인식이 강할수록 정신 건강 수준, 자존감, 삶의 만족도가 모두 하락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황은 인지적 위협을 가하고 재무적 상황을 통제할 수 없게 만든다. 불안감은 절망과 우울감으로 이어져 재무적 곤경에 대한 걱정의 늪에 빠지게 한다. 빈곤은 미래 재무 상황에 대한 부정적 생각도 조장한다. 눈앞에 닥친 재무적·심리적 곤경을 해결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과 노력을 쏟기 때문에 장기적 복지나 목표는 뒤로한 채 생존을 위한 임시방편이나 즉각적 수익을 우선하게 된다.
궁핍하다는 인식을 조금 내려놓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변화로 한발 나아갈 수 있다. 당장 빈곤에서 물리적으로 벗어날 수 없다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인지적 능력을 갉아먹는 심리적 무게부터 덜어내는 연습을 하면 도움이 된다. 빈곤은 개인의 건강과 마음을 해치며 나아가 각종 사회 문제의 불씨가 된다. 빈곤하다는 생각을 떨치려는 개인의 노력과는 별개로 국가와 기업 역시 재무적·심리적 곤경에 처한 국민을 보살필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곽승욱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swkwag@sookmyung.ac.kr
정리=이규열 기자 ky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