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은행 외벽에 붙어 있는 금리 안내문. 뉴시스
국내외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던 지난해 8조 원 가까이 줄었던 가계대출이 다시 급증하고 있다. 은행의 대출금리가 20개월 전 수준으로 하락하고, 부동산 거래가 조금씩 살아나면서 빚에 대한 가계의 경계심이 느슨해진 탓이다. 선진국 중 최고 수준인 가계부채가 더 늘어날 경우 경제 성장의 발목까지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의 고정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현재 연 3.7∼5.8% 수준이다. 가장 낮은 금리는 올해 1월보다 1%포인트 이상 내렸고,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직후인 재작년 9월의 3.2% 이후 가장 낮다. 일반적으로 고정금리보다 높은 가계대출 변동금리 역시 3%대 하락을 목전에 두고 있다.
최근 대출금리는 은행의 자금조달 금리보다 큰 폭으로 내리고 있다. 은행들이 예금·대출 금리차를 이용해 과도하게 돈 버는 걸 금융당국이 비판하며 인하를 압박한 영향이 크다. 미국 중소형 은행의 연쇄파산으로 미 연방준비제도가 더는 금리를 높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 때문에 대출금리는 더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4위로 100%가 넘는다.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내줘야 할 전세보증금까지 빚으로 잡으면 150%를 넘겨 세계 1위다. 이런 상황에서 빚이 안 줄고 오히려 늘면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줄어 소비가 위축되고 결국 경제성장률까지 깎아먹게 된다.
미국과 금리 역전 폭이 커지는데도 기준금리를 3.5%로 두 차례 동결한 한은 결정은 대출 반등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아무리 한은이 ‘긴축은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해도 개인, 가계는 금리 동결을 긴축 종료로 판단하고 있다. 한은과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반등을 심각한 위험신호로 받아들이고, 이에 맞춰 통화·금융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