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4일(현지 시간) 치러진 튀르키예(터키) 대선에서 2003년부터 장기 집권 중이며 사실상의 종신 집권을 노리는 ‘현대판 술탄’ 레제프 타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이에 따라 그와 2위를 한 케말 클르츠다로울루 공화인민당(CHP) 대표가 28일 결선 투표를 치른다. 집권 내내 친(親)러시아, 반(反)서방 행보를 보인 에르도안 대통령의 재집권 여부를 가르는 이번 선거는 ‘올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15일 튀르키예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개표율 97% 기준 에르도안 대통령은 49.4%를 얻어 44.9%의 6개 야당 단일 후보인 클르츠다로울루 대표를 4.5%포인트 앞섰다. 3위는 시난 오안 승리당 대표(5.3%)로, 결선 투표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행정수도 앙카라에 결집한 지지층 앞에서 “조국이 두 번째 투표를 바란다면 환영할 것”이라며 결선 투표에서 재집권을 확신했다. 선거 직전 그는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클르츠다로울루 대표에 뒤지는 것으로 나오자 각종 포퓰리즘 공약을 내걸었다. 클르츠다로울루 대표 역시 “결선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맞섰다.
‘대선 혼란’ 튀르키예, 리라화 가치 두 달만에 최저
대선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를 배출하지 못하자 튀르키예는 결선 투표가 실시되는 28일까지 상당한 혼란에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15일 리라화 가치가 2개월 최저치인 미 달러당 19.7리라대로 떨어진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내각책임제 시절인 2003~2014년 3선 총리를 지냈다. 총리 퇴임 직후인 2014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고, 2017년 5년 중임 대통령제로의 개헌안을 통과시켜 다시 권력을 잡았다. 그가 28일 결선 투표에서 승리하면 2028년까지 집권할 수 있다. 현행 헌법에서는 그가 이 기간 중 조기 대선을 치러 승리할 경우 2033년까지 집권도 가능하다. 현재 69세인 그가 79세까지 30년간 초장기 집권할 수 있는 셈이다.
이를 의식한 듯 6개 야당 단일 후보인 클르츠다로울루 대표는 15일 “선관위와 정의개발당이 1000개가 넘는 투표함의 개표를 방해했다. 그냥 지켜보지 않겠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일각에서는 그가 결선 투표에서 패할 경우 불복할 가능성마저 제기하고 있다.
이번 선거는 올해 초 전 국토를 강타한 대지진, 고질적인 경제난,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여야 대립 속에 치러졌다. 전 세계 또한 튀르키예 대선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헝가리부터 인도까지 ‘스트롱맨’ 통치가 부상한 시대에 에르도안 대통령의 평화적 교체가 가능하다면 전 세계 민주주의에 상당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카이로=강성휘 특파원 yol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