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일터를 찾아서]〈2〉 영국의 합리적 노사관계 “형편 어려운 조합원이 모아준 돈 법적 의무 아니어도 공개” 투명 강조 노조 “파업해도 업무 지장 최소화”
지난달 13일 영국 최대 공공서비스노조 유니슨의 닉 크룩 국제관계부장이 런던 유스턴가 유니슨 본부 회의실에서 기자오 만나 노조 회계 등이 담긴 연례 보고서를 설명하고 있다. 영국 노조는 매년 인준청에 이 보고서를 제출할 법적 의무가 있다. 런던=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부활절 공휴일이었던 지난달 10일 오전 10시 반.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 개장을 30분 앞두고 박물관 정문 앞에서 노조원 수십 명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무엇을 원하나, 공정 임금!” 박물관 보건안전노조 대표인 훔자 아시프 씨(26)가 선창하면 노조원들이 후창을 외쳤다. ‘정식 집회(Official Picket)’라고 적힌 팻말도 보였다.
● 개장시간 맞춰 파업 중단한 英 노조
박물관 개장시간인 오전 11시. 갑자기 이들이 피켓을 내려놓고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경찰이나 박물관 측의 요구는 없었다. 아시프 대표는 “관람객에게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며 “파업에 불참한 동료들도 있지만 그들을 비방 혹은 제명하거나 위협하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 “회계 공개? 법 아니어도 당연한 일”
지난달 13일 영국 런던 유스턴가 130번지. 기자는 영국 최대 공공서비스노동조합 유니슨(UNISON)의 본부를 방문했다. 조합원 130만 명, 1000개 이상의 지부를 갖춘 영국 최대 규모 노조 중 하나다. 건물 로비로 들어서자 닉 크룩 유니슨 국제관계부장이 기자를 회의실로 안내했다. 크룩 부장은 책상 위에 60여 페이지에 달하는 서류 뭉치를 내려놨다. 그는 “우리 유니슨의 회계 서류, 일명 ‘연례 보고서’”라며 “외국에서 온 기자인 당신도, 노조원도, 영국 국민도, 그리고 정부도 누구나 이 서류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영국 노조는 정부 산하기관인 ‘인준청(Certification Officer)’에 연례 보고서를 매년 제출할 법적 의무가 있다. 기자가 본 유니슨의 보고서에는 지도부 대위원회의 명단, 전체 노조원 수, 성별, 지역 분포까지 적혀 있었다. 수입-지출 현황을 담은 대차대조표도 있었다. ‘파업 지출 자금’ ‘기후위기 관련 정치 자금’ ‘정당 후원 정치자금’ 등 항목별로 구체적인 지출 금액도 적혀 있었다. 한국의 노조들은 공개를 꺼리는 내역들이다.
유니슨이 정부에 제출하는 보고서의 총분량은 60여 장이다. 정부에 제출한 보고서는 인준청 홈페이지에 공개된다. 노조 역시 노조 홈페이지에 별도로 외부 회계감사 내역을 공개한다. 정부가 굳이 서류를 제출받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모든 회계를 공개한다는 것이 유니슨의 방침이다. 크룩 부장은 “설령 법적 의무가 아니더라도 회계 감사를 받거나 회계 서류를 공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물론 우리도 정부 간섭이 달갑진 않다. 하지만 우리 조합비는 형편이 어려운 조합원들이 모아준 돈이다. 이 때문에 운영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노사 협력, 영국 33위 한국 130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영국의 노동생산성은 시간당 59.18달러(약 7만9500원), 한국은 42.85달러(약 5만7600원)였다. 영국 옥스퍼드브룩스대에서 고용 및 조직을 연구하는 안드레아 베르나르디 교수는 “영국은 노사가 서로를 비방, 무시하지 않고 협력하며 사회적 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영국 정부 역시 노사 분쟁 해결을 적극 돕고 있다”고 평가했다.
런던=김예윤 기자 yea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