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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효자도 무조건 상속… 헌재 심판대 오른 유류분 제도[횡설수설/서정보]

입력 | 2023-05-16 21:30:00


민법상 재산 상속에 있어 ‘유류분’ 제도의 존재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것은 2019년 구하라 씨 사건이었을 것이다. 당시 구 씨가 숨지자 20여 년 전 가출했던 친모가 갑자기 나타나 자신의 상속분을 달라며 소송을 걸었다. 자식을 버리고 코빼기도 내밀지 않았던 친모가 염치없게 재산을 요구한다며 대중은 공분했지만 법적으론 어쩔 수 없었다. 소송 끝에 구 씨가 남긴 재산의 40%는 친모의 몫이 됐다. 유류분을 요청할 수 있는 상속인을 제한하는 ‘구하라법’은 20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됐고, 21대 국회에선 아직 계류 중이다.

▷유류분은 상속인인 배우자와 자녀, 부모, 형제자매에게 법정상속분의 2분의 1∼3분의 1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고인 생전에 상속 포기 각서를 썼더라도 유류분은 인정될 만큼 강력한 제도다. 그러나 재산 형성 기여도, 부양 여부 등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적용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최소한 구 씨의 친모 같은 사례나 불효자는 제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유류분 소송이 급증하는 추세 속에서 현행 법조항만으로 판결 내리는 건 부당하다며 수십 건의 위헌심판제청과 헌법소원이 헌법재판소에 들어가 있다. 헌재는 17일 유류분 관련 첫 공개변론을 갖는다.

▷1977년 생긴 유류분 제도는 유산이 아들, 특히 장남 위주로 분배되는 것을 막고 부인과 딸도 받을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여성 권리 향상을 위한 제도였던 셈이다. 하지만 산업화와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당초 법의 취지와 어긋난 경우가 자주 발생했다. 우선 여성이 상속에서 소외되는 일이 많이 사라졌다. 평균수명이 길어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부모가 숨질 때 자녀가 한창 일할 40∼50대여서 생계 보장용 유산 상속의 필요성이 많이 줄었다. 결혼 안 한 1인 가구 문제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없는 상태에서 혼자 생계를 꾸리는 피상속인이 사망하면 형제자매가 상속을 받는데, 생계가 독립된 형제자매에게 유류분을 줘야 하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서류상 가족이란 이유로 고인과 불화했거나 연락이 없던 이에게 상속이 이뤄지면 가족관계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 공익 목적으로 사회에 유산을 남기고 싶어도 유류분 때문에 온전한 기부가 힘들어지는 것도 폐해다. 영국과 미국은 유류분 없이 유언대로 집행한다. 유류분을 인정하는 나라도 미성년자나 경제적 능력이 없는 상속인으로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의 유류분은 한때 시대를 앞서갔으나 이젠 사회의 급속한 변화에 일정 부분 맞지 않는 제도가 됐다. 지금처럼 획일적 비율로 나눠 주지 말고 부양과 양육 기여도, 경제 상황에 따라 합리적으로 분배돼 가족을 나 몰라라 한 불효자가 횡재하는 경우는 없었으면 한다.
서정보 논설위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