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프레데리크 바크의 ‘나무를 심은 사람’
이정향 영화감독
1913년. 알프스의 오지를 여행하던 청년은 폐허가 된 마을에서 홀로 사는 부피에를 만난다. 가족을 모두 잃어 외톨이인 그는 매일 도토리 100개를 하나씩 땅에 심는다. 그래도 제대로 자라는 것은 열에 하나뿐이라며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지금까지 10만 개를 심었다. 청년은 몇 년 뒤 다시 그곳을 찾는다. 부피에가 심었던 도토리들은 숲을 이뤘다. 시냇물이 흐르고 새들이 돌아왔다. 세월이 흘러 부피에는 여든이 넘었지만 여전히 나무를 심는다. 숲의 혜택을 누리며 사는 마을 사람들은 그 숲이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여긴다. 부피에는 세상을 뜰 때까지 자신이 수십 년 동안 해 온 일을 생색내지 않았다.
최근에 세종시에 갔었다. 지도를 보며 걸었는데도 길치답게 헤맸다. 허둥대며 제시간에 맞췄지만 앞 순서들이 꽤 밀려 있었다. 심판기일에 의견진술을 하고자 간 터였다. 주변에선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말렸지만, 자신감 과잉이었을까? 부모님 앞으로 부과된 재산세, 상속세, 심지어 건강보험료까지 계산 착오로 과하게 부과된 걸 내 힘으로 밝혀낸 전적이 있기에 의견진술을 위한 서류 작업에 몰두했다. 내 머릿속은 점점 곡선 대신 직선으로 가득 찼다.
동화가 원작인 애니메이션 영화다. 감독 프레데리크 바크는 5년간 이 영화를 만드느라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나는 몇 달간 서류와 씨름하느라 안과 신세를 졌다. 죄송합니다.
이정향 영화감독